2015 밀라노 엑스포 폐막이 다가오던 날, 한국관을 찾은 한 이탈리아 방송국 담당자가 짧지만 진한 질문을 건넸다. “엑스포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무엇일까요?” 언론 담당으로서 수많은 취재진에게 한국관 소개를 반복했던 때에 예상에서 벗어난 이 질문이 아직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Solidaritat(연대),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메시지를 이야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은 문화가 달라도 같이할 수 있는 연대의 힘을 일깨워주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힘든 가운데 제2의 고향과도 같은 이탈리아 소식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이동 금지 기간 중 같은 책을 몇 번씩 읽고 거울을 보며 건배를 했다는 친구들의 일상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지속해서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친구들에게 랜선 여행을 제공했다. 최선을 다해 이탈리아 친구들의 일상에 힘을 더했다. 활기찼던 도시, 밝고 긍정적인 이탈리아 친구들이 팬데믹에 점차 무기력해져 갔다.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보다 이동의 자유를 잃어버린 인간의 나약함이 더 큰 문제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이탈리아 친구들과의 단체 대화방에 에너지 넘치는 대화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몇 시간 뒤 발코니 콘서트 플래시몹에 참여하기 위해 집안에 있는 냄비와 조리도구를 꺼내놓은 사진이었다. 발코니를 통해 함께 노래 부르며 호응하는 이탈리아의 풍경이 영상으로 도착했다. “Tutto andra` bene!(다 잘될 거예요)” 기가 막히면서도 기쁨에 가득찬 표정의 사람들이 보였다. 햇빛을 좋아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발코니는 세상과 마주하는 공간, 다른 이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연대의 자리로 거듭났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팬데믹의 공포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2020년의 팬데믹과 2015년의 밀라노 엑스포의 경험이 교차하는 가운데, 연대의 힘을 기록할 기회가 생겼다. 올해 8월 인천문화재단으로부터 코로나19와 이탈리아 문화예술계에 관한 원고를 의뢰받았다.

필자는 코로나가 가져온 이탈리아의 일상과 문화예술관광계의 동향을 기고했다. 나약함과 희망이 등장했던 친구들의 사진, 문화의 보고 이탈리아를 걱정하며 찾았던 기사들이 빛을 발하며 팬데믹의 혼란 가운데 다시 살아나갈 힘을 찾는 이탈리아의 저력을 볼 수 있었다. 발코니를 통한 음악, 마스크를 쓰고 마주하는 작품, 랜선 공연 등 어려움 속에서 위로와 희망으로 작동하는 문화예술의 힘도 확인했다.

재단이 기획한 <코로나19를 감각하는 사유들>은 문화현장에 있는 이들이 경험한 코로나로 인한 다양한 변화와 통찰을 담고 있다. 출간과 함께 코로나의 종식을 기대했던 터라 출간이 의미 있으면서도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나 마스크가 필수가 되어버린 시대, 코로나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를 관찰하고 기억하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년회보다 메시지와 전화로 신년인사를 대신하는 가운데,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이 더욱 진하다. 떨어져 있지만 함께함의 의미, 위드 코로나 시대, 위드(with)와 코로나(corona) 사이에 방점을 찍으며 희망을 기대해본다.

/유영이 서울대 건축도시이론 연구실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