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낯선 땅 향했던 그때로 출항합니다
▲ 한국이민사박물관 내부에 전시된 하와이 이주 한국인을 태웠던 이민선 '갤릭호'. /사진제공=한국이민사박물관

1902년 12월, 혼란스러운 정세 속에 긴 가뭄까지 겹쳐 생활이 어려워지자 우리 선조 121명이 제물포항에서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을 향해 이민을 떠났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공식적인 첫 해외이민이었다.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갤릭호에 몸을 실어 하와이로 떠난 이후 약 100년이 넘는 기간 우리 민족은 낯선 이국땅에서 역경과 시련을 극복했다. 현재는 약 700만명의 자랑스러운 한국인들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려 국위를 선양하며 살고 있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기리고 보존해 후세에 알리기 위해 첫 공식 이민의 출발지였던 인천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을 2008년 개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 박물관이며 지금도 유일하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제1전시실~제4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 방고.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들이 목에 걸고 다녔던 신분증으로 번호의 일본식 발음. 이름을 대신했다. /사진제공=한국이민사박물관

▲제1전시실

제1전시실에서는 이민의 출발지였던 개항 당시의 인천과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국내정세, 그리고 하와이 상황을 살펴 볼 수 있다. 이민자들을 싣고 하와이로 떠난 첫 선박인 갤릭호 모형을 통해 당시 이민자들의 길고 험난했던 여정도 생생히 체험해 볼 수 있다.

하와이 첫 이민단 121명이 인천 제물포에서 일본우선회사 현해환(겐카이마루)에 승선, 일본 나가사키 항을 향해 2일간의 항해에 올랐다.

12월24일 나가사키 항에 도착해 검역소에서 신체검사와 예방접종을 받고 하와이로 가는 미국 태평양 횡단 기선 갤릭호(S.S Gaelic)에 탑승했다. 처음 121명이 인천 제물포를 떠났으나 일본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19명이 탈락, 102명만이 갤릭호(S.S Gaelic)를 타고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 가죽채찍.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십장인 '루나'가 말을 타고 다니면서 노동자들을 감시할 때 썼다. /사진제공=한국이민사박물관

▲제2전시실

제1전시실이 어떻게 조선인들이 해외 이민을 떠났는지에 대한 과정을 보여줬다면 제2전시실에서는 그 나라에서 정착하고 환경을 극복하는 내용을 알 수 있다.

1905년 하와이에는 약 65개의 농장에 5000여명의 한인 노동자들이 혼합 농장에서 다른 민족들과 더불어 생활했다. 사탕수수농장에서는 십장인 '루나'의 감시를 받았고 뜨거운 햇빛 아래서 힘든 노동도 견뎌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농장에서의 규칙적인 생활과 제도의 압박감이었다.

한 달 일을 마치면 어른 남자의 월급은 17달러, 여자나 소년들은 하루에 50센트를 받았다.

당시 사진만 보고 결혼을 하는 일명 '사진신부' 약 700명이 하와이로 건너가기도 했다. 이렇게 본격적인 초기 한인 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사진신부들 또한 개척자로서 강인하고 적극적인 삶을 꾸려나갔다.

전시실에는 미국 전역에 뿌리를 내린 이들의 발자취 등을 담은 사진자료 및 유물을 전시했다. 사탕수수농장 한인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생활을 담은 영상과 하와이 한인학교를 연출해 놓은 교실에서는 그 당시 사용 했던 교과서 등을 볼 수 있다.

▲ 유성기 선전지. 동포들은 고국에서 보내온 민요, 가곡, 유행가를 들으며 향수를 달랬다. /사진제공=한국이민사박물관

 

▲제3전시실

우리나라 이민은 하와이 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 일본, 사할린 등 한반도 주변 지역으로 본격화 됐다.

러시아 연해주의 한인들은 1937년 스탈린 정권의 한인 이주 정책으로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로 이송되면서 한인들의 거주지는 주변국을 넘어 중앙아시아로도 확장됐다. 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중남미와 독일 등지로 떠나기도 했다.

3전시실에서는 전 세계로 흩어진 이민의 역사와 특히 또 다른 의미의 이민이라 할 수 있는 해외입양과 관련해서 다루고 있다.

 

▲제4전시실

4전시실에서는 전 세계 각국으로 진출,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700만 해외동포의 근황과 염원을 살펴볼 수 있다.

그 밖에 한인이민사를 재조명하고 한인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각종 해외이민 기념사업과 축제, 문화 활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안내돼 있다.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첫 출발지인 인천에는 하와이 이민자들의 조국에 대한 교육적 열망을 담은 인하대학교가 설립됐다. 인하대학교의 교명 역시 인천과 하와이의 첫 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설립자금에는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부지 매각 대금과 정부 지원금, 시민들의 성금 등이 포함됐다. 인하대학교의 설립은 하와이 교포들의 정신적인 귀환이자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염원을 실현한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미주한인이민 100주년을 맞아 한국이민사박물관 건립을 결의하고, 그에 관한 사진전시 및 학술대회를 지속적으로 개최 하는 등 이민사 재정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별전시

현재 한국이민사박물관은 미주한인 2세 고(故) 김영옥 선생에 대한 특별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전쟁영웅인 그는 퇴역 후 소수계 이민자·아동·청소년·여성·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수호자로 평생을 살아왔다.

이번 전시는 한국이민사박물관 지하 1층 기획전시실에서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다만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하여 단체관람은 제한되며, 입장인원은 수용가능인원의 절반 수준으로 제한한다. 박물관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등에 따라 불편을 겪는 관람객을 위하여 온라인 가상현실(VR) 전시 등을 준비 중이다.

 


 

▲박진영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 “노동이민 처절한 실상, 피부로 체감할 수 있어”

 

▲ 박진영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
▲ 박진영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 /사진제공=한국이민사박물관

“한국에서 유일하게 이민사를 다루고 있는 박물관으로써 자부심이 큽니다.”

박진영 한국이민사박물관 관장은 인천 제물포항을 통해서 첫 해외이민이 이뤄진 배경으로 전 안상수 시장 때 박물관을 인천에 세우자는 계획이 추진됐다고 말했다. 개관 초 하와이와 남미 위주로 진행되던 전시 내용은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해외동포들이 포진해 있는 다양한 지역으로 확장됐다.

“주제가 독창적인 만큼 한국이민사박물관 자체 특허 등록이 돼있죠. 이곳에 오면 한국 이민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박물관은 특히 '노동이민'에 대해 주로 다루다보니 그들의 어둡고도 처절한 실상이 잘 담겨 있다.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모형으로 제작된 일상생활이 눈길을 끈다.

“멕시코 이민자들의 생계수단이었던 '에네켄' 손질 기계도 유물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간 문제로 전시하지 못하지만 올해 중으로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계획입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