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KBS 사장의 신년사는 시청료 인상이 화두였다고 한다. 지난해 추석 나훈아를 내세워 반짝 눈길을 모았던 KBS다. “KBS가 이것 저것 눈치 안보고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면 좋겠다”는 충고도 나왔던 무대다.

신년사에 그 콘서트 뒷얘기도 포함됐다. 한 해외동포가 손편지와 100달러짜리 두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고국에 못 오는 아쉬움을 달래준, 잘 차려진 추석 상차림처럼 감동이었다'고 쓰인 편지였다. 그런데 200달러는 수신료 100개월, 8년 치에 해당하는 돈이라고 KBS는 풀이했다. 그러나 영국 BBC 수신료로는 1년 치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다. 정말 대단한 '제 논에 물대기' 아닌가. 애먼 BBC만 의문의 일패를 당한 셈이고.

#그 나훈아 열기는 해가 바뀌고도 그대로다. 얼마 전 출시된 '대한민국 어게인' 음반은 곧바로 판매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3차 팬데믹이 아니었으면 송년 신년 무대들도 그가 석권할 뻔 했다. 지난달 서울, 부산, 대구에서 열려던 '테스형의 징글벨 콘서트'다. 11월 말 티켓 예매가 시작되자 8분, 9분만에 매진돼 버렸다. 중고거래몰에서는 16만5000원짜리 R석이 58만원에 나오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효도전쟁이 터졌다'고들 했다.

지난해 11월 김한솔의 탈출극 전말이 보도되자 나훈아도 다시 회자됐다. 그의 노래 '고향으로 가는 배'와 함께. 김한솔은 비운의 북한 황태자라 불렸던 김정남의 아들이다.

말레이시아에서 부친이 암살된 직후 서방 정보기관들이 빼돌려 아직 무사하다는 얘기였다. 그 김정남이 생전에 애창했던 노래가 '고향으로 가는 배'였다. 노래방에서 이 노래만 열 번을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단다. 지난해 추석 나훈아가 KBS 콘서트의 도입부에서 열창한 노래이기도 하다.

'고향으로 가는 배/꿈을 실은 작은 배/정을 잃은 사람아/고향으로 갑시다/산과 산이 마주 서/소근대는 남촌에/아침햇살 다정히/풀잎마다 반기는…' 애잔한 전주(前奏)와 무대 위 돛단 배는 듣는 이의 마음을 곧 고향으로 실어다 준다. 최고 권력자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이국을 떠돌며 고향을 그리며 울었을 한 사내가 떠오른다. 남이든 북이든, 정치며 권력은 모질고도 모질은 그 무엇인가.

# 또 하나의 곡이 있다. 테스 형. 처음엔 태수 형인가 했다. 경상도에서는 '댔으요(됐어요의 사투리)'로 들었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왔다. 그런데 소크라테스 형이었다니. 혹시라도 공자 형, 맹자 형이라 불렀으면 어쩔뻔 했나. 지난해 추석 이후 참 많이도 불리워졌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왜 이렇게 힘들어/아 테스형 소크라테스 형/세월은 또 왜 저래' 사투리 버전도 여럿 나왔다. '아 테스 성 소쿠라테스 성/사랑은 시방 왜 이러는겨(충청도)' '아 테스 성 소크라테스 성/시상이 왜 근대 왜 이라고 뻐친대(전라도)' 테스 형이 나훈아에게 보낸 답가는 경상도 버전이다. '니꼬라지 알라꼬/툭 내뱉고 가뿐말은/내도 내를 몰라가/씨부리고 가뿌다'

그런데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버전에서 똑 같이 번역된 말이 있다. '니 꼬라지를 알라'다 . 새해 벽두, 2500년 전 소크라테스가 툭 던지고 갔다는 '너 자신을 알라'를 다시 소환해 보자. 특히 돈이든 권력이든 그 정점에 선 사람들은 더더욱. 도가(道家)에서는 기세가 지나치게 성한 것과 사람이 자만하는 것을 가장 꺼린다고 했다. 사계절도 돌아가면서 찾아오는데, 인간이 무어 대단하다고 높은 자리에 오래오래 머물겠느냐는 거다.

/정기환 논설실장 chung783@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