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인천인' 장수영 한림병원 수간호사와 코로나19의 시간

생활치료센터에서의 혼돈과 괴로움
고립된 환자·생활고 겪는 사람들 보며
스스로를 달래 … 종식될 '내일' 기대를
▲ 인성의료재단 한림병원 간호본부 장수영(36)수간호사가 환자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사진은 장 수간호사의 얼굴을 노출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고 연출한 장면.

다들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울고 싶은 한해이었다. 밑도 끝도, 속절도 없는 나날이었다. 아무 도리 없는 시간이었다.

일곱 살 철부지 막내딸은 닭똥 같은 눈물을 떨궜다. “엄마! 꼭 살아서 돌아오세요.” 열 살배기 큰딸은 제법 어른티를 내며 응원했다. “엄마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화이팅.” 동갑내기 안경사 남편(36)은 영 내키지 않는 투였다. “보호구 꼼꼼히 챙기고, 요령껏 해.”

인성의료재단 한림병원(인천시 계양구 장제로) 간호본부 장수영 수간호사는 지난 3월 도망치듯 충북 제천의 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로 갔다. 넘쳐나는 대구·경북 코로나19 확진자들의 긴급 치료시설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단련된 나라도 당장 나서지 않는다면 죄도 없고, 책임져야 할 일도 없는 이들이 코로나19의 제물이 될 것만 같았다. 인간인 내가 고통받는 인간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인과율에 적용받아 코로나19를 키운 자연은 결코 너그럽지 않았다. 자연성을 더럽히는 인간을 향한 자연의 보복은 가혹했다.

더운 입김에 고글은 금세 습기가 서렸고, 땀범벅인 방호복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었다. 20분마다 돌아오는 교대 즈음에는 기진맥진이었다.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아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몸 밖으로 흠뻑 빠져나온 땀은 눈물의 대신이었다. 뭐라도 욱여넣어야만 될 듯싶어 빵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지만, 입맛은 저절로 자지러졌다. 장 수간호사는 그렇게 경기도 광주의 생활치료센터에서 8월의 3주를 버텼다.

고립과 차단에 갇혀 슬픈 아우성을 치는 코로나19 확진자나 고단한 밥벌이 인생보다야 낫지 않느냐, 그는 스스로를 위로 하면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지난달 인천시 중구 생활치료센터에서 견뎌낸 힘이었다.

아니게 아니라 코로나19 정국 속에서 전세금이 올랐다. 점포 임대료 부담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날그날 벌어서 겨우 먹고 살 수 있었던 서민들은 그보다 더한 가난에 위태롭다. 장 수간호사는 그 가난이 그냥 물적 결핍이 아니라 차별과 모멸을 탑재할까 두렵다.

“힘내세요.” 생활치료센터를 퇴소하는 완치자가 건네는 이 한마다는 그 어떤 영화나 책보다 그에게 감동적이었다. 그녀는 의심치 않는다. 혼자가 아닌 우리 관계가 코로나19로 혼란했던 세계를 기어코 기어코 눈 부시게 할 거라는 것을 …

/박정환 기자 hi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