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일본과 중국, 서구로부터 근대 문물을 처음 받아들인 도시다. 사실 지정학적 위치로 보면 독보적이고 실질적인 개항의 역사를 기록한 곳이다. 1883년 인천 개항을 시점으로 조선사회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제도와 시설이 밀물처럼 들어왔다. 그 역사적 흔적과 실체가 인천개항장 주변에 아직 남아 있다.

개항 직후 무역상사 이화양행, 세창양행, 타운센드상회가 들어서고 대불호텔이 문을 열었다. 초등교육기관 영화학당이 처음으로 서양 교육을 선보였다. 전보, 전화, 기상 관측기, 활자(인쇄)소, 극장 협률사 등이 19세기 말의 인천 풍경이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우마차로 한나절이 걸렸다. 배를 타도 서울 마포까지 8시간이 소요되던 시대였다. 1899년 경인철도 개통은 이동시간을 2시간으로 앞당기는 획기적인 교통혁명의 계기가 됐다.

인천은 서울로 가는 관문으로 인식됐지만 개항장 일대에 일본인들이 넘쳐나고, 결국 식민지 조선을 구축하는 통로가 되고 말았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후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로 이어갔다. 인천은 구미 열강들의 쟁탈을 예고한 조약 체결지였다. 그래서 한편 인천은 다문화를 수용했으나 조선의 비운이 싹튼 도시다. 인천 개항은 일방적인 외국인들의 유입이었다.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해외를 향해 출발한 날, 오늘(12월22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 첫 공식이민인 하와이 이민은 인천개항장이 출발지다. 아마도 이날 영하의 날씨는 제물포항을 떠나는 선조들의 어깨를 더욱 움츠려들게 했을 것이다. 가뭄과 홍수로 기근을 면치 못하고 일본의 쌀과 곡물에 대한 수탈이 멈추지 않았던 시국이었다. 굶주린 백성 구제를 위해 1901년 10월 서울과 지방에 혜민원이 들어섰으니 하와이 이민은 생존을 위한 선택지였다.

이민 한 달 전, 집조(여권) 발급을 위한 유민원이 설치되고 1902년 12월22일 1진 121명이 제물포항을 출발했다. 하와이 이민이 금지된 1905년 4월까지 65편의 선박이 출항했고, 7415명이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이민으로 기록됐다.

118년 전 오늘, 집조를 소지한 선조들은 아침 일찍 인천 중구 내동에 있는 데쉴러이민사무소에 집결해 해관 부둣가로 향했을 것이다. 월미도 앞 먼 바다에 정박 중인 일본우선 소속 겐카이마루(현해환)에 승선해 일본 나가사키로 가기 위해서다.

승선장에는 유민원 민영환 총재, 인천내리교회 존스 목사 등 친인척 등이 석별을 나누었다. 나가사키항에서 이민선 갤릭호에 옮겨 탄 이민 선조들은 태평양을 횡단 20일의 항해 끝에 하와이 호놀룰루항에 도착했다. 1903년 1월13일 신체검사를 통과한 86명이 최종 상륙허가를 받았다.

하와이 이민은 우리 민족의 유출이라는 점에서 개항 인천으로서는 의미가 깊다. 그럼에도 인천은 이날을 박물관 전시실에만 묵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고 싶다. 인천내리교회 존스 목사의 권유로 이민의 과반수가 교인이었다. 1891년 우리나라 첫 예배당을 건립했던 내리교회는 하와이이민의 산파였다. 하와이 이민 이듬해 해외 선교사를 파송하는 등 1903년 11월10일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인하대학교는 하와이 이민 50주년을 기념해 1954년 우남 이승만 박사가 설립했다. 우남은 1913년부터 하와이에서 동지회를 결성하고 조국 독립운동과 민족 교육운동에 헌신했다. 이민 선조들은 한인학교를 세우고 자녀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얼마 안 되는 월급을 쪼개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았다.

우남이 하와이에서 운영한 한인기독학원 매각대금 15만달러를 종잣돈으로 정부지원금 100만달러, 시민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성금 등이 인하대 설립의 근간이었다.

인하대는 하와이에서 꽃핀 교육운동이 다시 조국으로 이어진 완벽한 디아스포라의 귀환으로 평가되는 상징이다. 2008년 6월13일 월미도에 개관한 한국이민사박물관도 인천 개항장을 조국의 마지막 땅으로 밟은 이민 디아스포라의 정신을 잇고 있다.

내리교회, 인하대, 이민사박물관 등 우리나라 이민사의 실체가 인천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하와이 이민의 역사적 가치와 정신은 개항장 문화유산에 못지않게 인천의 소중한 자산으로 계승돼야 한다. 하와이 역사·문화와 관련된 인천의 기관·단체 등이 오늘, 하와이 이민에 담긴 뜻을 되새겼으면 한다.

/김형수 논설주간 khs@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