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찾아서
자료사진. /출처=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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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오피스텔 지하층에 대형 마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전통시장에 나가서 이것저것 장을 보고 돌아오는 것은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의 하나이다. 이번 주는 마침 미국서 방문한 아들에게 구경도 시켜줄 겸해서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길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는 것부터 여행의 시작.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인천지하철은 깨끗하다. 전동차가 전역에서 출발했다 알리는 표시가 들어왔다. “아들, 저게 뭔지 알아? 지금 열차가 바로 전 역에서 출발해 이 역으로 향하고 있다는 표시야.” “Wow, Technology!” 지하철 열차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엉덩이가 따뜻하도록 적당히 히터가 돌아가는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을 감고 졸고 있거나 아니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는 모양새이다. 우리도 별다를 바 없이, 난 귀에 이어폰을 끼고 설교말씀을 듣고, 아들은 미리 다운로드 받아둔 소설을 읽는다. 가끔 내게 영어로 말을 하는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난 한국말로 대답하면서 짐짓 모른척한다. 부평역. 우르르 사람들이 내렸다. 서울로 가려면 환승을 해야하기 때문에 보통은 혼잡하기 마련이지만 코로나가 심각하다는 두려운 뉴스를 전하는데다가 기온마저 내려 추운 탓인 지 생각보다 북적거리진 않았다. 우린 계단을 올라, 곧바로 지하상가로 먼저 들어갔다. 

짜잔! 마치도 영화에서 주인공이 문을 열면 환한 공간이 새롭게 펼쳐지는 것처럼, 지하철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나타난 지하상가의 모습은 전혀 색다른 세계의 모습이다. 각각 아름다운 옷들이 넘치고 풍성하게 나열된 의류가게, 화장품 가게, 액세서리 가게, 신발가게 등등. 월등하게 여성복이 주를 이루지만 남성복 가게들도 많다.  여자들 못지않게 남자들 역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시대임을 알겠다. 성별의 차이가 다소 완화된, 그래서 나이 들은 세대에게는 생소한 면도 있다.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든 두려움이든,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에는 언제나 일말의 간격과 차이가 있을터이다. 

부평시장에 들어섰다. 대형마켓에서 볼 수 없는 풍경. 점포를 중심으로 가운데 줄지은 노점상. 호떡, 오뎅, 떡볶이를 파는 곳 뿐 아니라 각종 반찬가게도 즐비하다. 생선가게, 정육점, 포목점, 이불가게, 과일과 채소를 수북히 얹어두고 손님들과 정겹게 사고팔고 하는 모습. 난 돼지갈비 양념된 것을 샀다. 우수리를 덜어내고 만원으로 가격을 정했는데도 한 점 더 얹어 주면서 주인이 하는 말, “여기가 그래도 시장인데 정이 있어야지~” “너무 좋아! 맛있게 먹을게요, 사장님. 호호”

정해진 가격표에 따라 틱틱 스캔된 다음, 카드를 사용해 계산하고 나오는 식의 단순 명료한 대형마켓 장보기와는 다른 표정의 전통시장. 현금계산을 주로 하기 때문에 우수리는 대부분 잘라먹고 오히려 정(情)을 담아 건네는 곳. 아들은 잘 알아듣지 못해도, 엄마와 상점 주인들과의 거래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검은색 봉지 한가득 들어찬 것들에 만족한 표정이다. 내가 오늘 얼만큼 절약 했는지 알지 못해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봉지마다 풍성한 먹거리가 들어차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흐뭇할테지만 말이다. 

송도 집으로 돌아와 시장에서 건져 올린 풍성한 먹거리를 정리한 후 창밖으로 눈을 던진다. 신호등 불빛과 지나치는 차량의 후등이 초록, 빨강, 금빛으로 뒤섞여서 마치도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인 양 느껴지는 저녁이다. 미국 동네는 아파트 고층 건물 대신 간간이 떨어진 단독 주택이 대부분인데, 이 맘때 즈음이면 지붕과 앞마당에 온갖 모양의 성탄 장식을 한 집들이 수두룩하다. 올해는 그것들을 즐기지 못하지만, 그나마 창밖 도심의 모습에서 그 같은 불빛을 찾는다. 이번 주가 크리스마스임에도 계속해서 코로나 확진자가 엄청 무섭게 늘어나는 바람에 언감생심 할리데이 Holiday 느낌을 그리워 함 자체가 사치인 듯 느껴진다. 백신공급의 차질을 원망하기보다 일단은 나부터 개인방역을 철저히 해야겠단 생각이다. 우울한 크리스마스가 될까  염려하는 대신 차분한 성탄이라 여기면 될 듯. 아기 예수도 조용히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Merry Christmas to you!

 

/Stacey Kim 시민기자 staceykim6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