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포드 대학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년 '역사의 종말'이라는 논문에서 공산주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 승리를 선언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공산주의가 패배하고 자유자본주의가 승리함으로서 헤겔과 마르크스적 의미의 역사는 종언을 고했다는 주장이다. 세계가 미국 등 서방 자유민주주의적 체제로 진화, 발전하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는 지구상 유일하게 남은 경제사회 체제임에는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공산주의라는 경쟁자가 없어지면서 자본주의라는 승자의 저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자본의 편재, 부와 소득의 불평등 같은 본질적인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대처 수상이 신자유주의를 주창하였다. 핵심은 시장의 자유를 극대화하고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시장주도의 세계화와 복지정책의 후퇴로 빈익빈, 부익부가 심화하고 세계화에서 소외된 계층들의 불만이 누적되었다. 결과적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극우 정당들이 득세하고, 세계적으로 우파 포퓰리즘이 확산하는 현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한편 프랑스의 소장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2014)'에서 자본주의에 내재한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역사적이고 통계적인 접근방법으로 제시하여 전 지구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자본소득이 노동소득보다 우위에 있으며 경제성장이 소득 및 부의 분배와 음의 상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자유자본주의로 그 필요에 따라 발전하고 분화해 왔다. 현재는 미국식 자유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로 분화하고 있는 중이다. 본래 국가자본주의는 자본주의 계획경제라고도 하며,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의 국가주의적인 대량의 국유화 정책을 의미한다. 공산권 국가에서는 공산주의 신경제정책이라고도 하였다. 시초는 소련의 레닌이 러시아혁명 후 한때 도입해 적용을 시험하였으며, 국가에서 자본을 얻기 위해 실시했던 사회적 경제 제도였다.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들에서는 국가 위기 상황에서 불가피한 경제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필요시 사용했던 경제체제이기도 하다.

작금 미국식 자유자본주의와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실상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 갈등의 본질은 자본주의를 둘러싼 양국의 패권다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행보에 대해 미국의 자유자본주의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를 패퇴시키기 위한 총력전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이러한 추이는 2021년 1월20일 취임하는 미국 바이든 대통령의 새로운 정부에서도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직접적인 배경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진행된 중국의 경제발전이다. 지난 2006년 미국 경제는 중국의 5배였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이 지체된 반면 중국 경제는 꾸준히 성장했다. 2019년 미국의 경제 규모는 중국보다 단지 49.4% 클 뿐이다. 2030년에는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최근 불평등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 학자인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저서 '홀로 선 자본주의(2019)'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펼치고 있다. 미국의 자유자본주의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에 대해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한 체제가 전 세계를 지배하지는 못할 것”이라며 예언한다. 대신 자본주의의 내재된 한계이자 가장 큰 숙제인,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더 잘 해결하는 쪽이 결국엔 살아남을 거라고 역설하고 있다.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론 부정적인 입장이다. 본질적 한계인 '부패' 문제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란 점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반(反) 부패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부패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의 경우도 경제성장과 더불어 부와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이라는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이다. 자본소득의 급증, 집중되는 자본 소유권, 소득과 부의 대물림, 부동산 가격의 급격한 상승, 학력의 세습 현상 등이 그러한 예다. 두 경제 체제의 패권 경쟁 속에서 부작용과 병폐를 최소화하고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우리만의 공진화 방안 또는 제3의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다.

/이상익 프리랜서·행정학 박사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