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숨을 고르는 겨울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숨가쁘게 달려왔던 호흡을 가다듬는 시기다. 누구에게나 휴식기는 필요하다. 자연의 순리다. 씨앗을 뿌려 열매를 맺고, 가을걷이를 끝내 곳간에 그 수확물을 쟁여놓는 농부를 봐라. 어김 없이 다가오는 사계절을 빗대, 겨울은 좀 쉬어가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정말 그런가. 특히 정치판을 한번 보자. 여기저기 마음의 여유 없이 악다구니를 쓰는 이들을 보는 심정은 씁쓰레하다. 먹고살기에 바쁜 국민을 챙기기도 버거운 마당에, 다툼과 갈등으로 날을 지샌다. “인생이 다 그렇지”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요즘 돌아가는 정국을 보노라면 왠지 정신 사납다. 서로 이해하고 관용을 베푸는 삶은 정녕 요원한가. 이젠 정쟁을 떠나 '자연의 순환'을 따르며, 멀어진 사이를 좁혀 나갔으면 싶다. 그렇지 않으면 양쪽 다 파국을 맞게 되리라.

#내일의 희망을 찾아

1년 열두 달을 마감하는 12월이다. 한 해 한 해 가는 세월의 더께 속에서 지나간 시간을 되짚는다. 삶의 모퉁이를 돌아 어떤 생활을 했는지 더듬는다.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일이야 별로 새롭지 않지만, 그래도 지난 1년을 상기하는 일은 인지상정이다. 내내 땀을 흘리며 고군분투하고, 또 1년을 준비하는 농부처럼 다시 내일의 희망을 찾는다. 사람마다 1년 농사를 짓는 마음으로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면,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리라. 정성을 모아 가는 인생이야 말로 긍정적인 활력을 불어넣는다고 믿는다.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사계절은 쉼 없이 다가온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추위가 함께 닥치듯, 우리네 살림엔 시린 부분이 없는지 생각하기 마련이다. 옛날과 달리 요즘이야 입성과 먹을거리 등이 풍성해 겨울이라고 딱히 따로 준비할 일은 없지만, 마음마저 움츠러들지는 말아야 한다. 아울러 주변에 추위로 얼어붙는 삶을 사는 이웃은 없는지 돌아봤으면 싶다. “자기 배 부르면 하인 배 곯는지를 모른다”는 속담과도 같이, 혼자 잘 살면 뭘 하나. 결국엔 자신도 못 사는 지경에 빠져 가난을 면치 못한다는 경구다. 더불어 가는 삶은 3대가 복을 받는 일이다. 옷깃을 여미며 겸손을 이어나가 자애를 실행했으면 한다.

#연탄 후원 발길 뚝

“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뜨거운 사람이었느냐/반쯤 깨진 연탄/언젠가는 나도/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중략)/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하략)” 시인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제목의 시다.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의 처음은 바로 연탄재로 시작한다. 우리에게 묵직한 한방을 먹인다. 눈덮인 언덕길에 연탄재를 놓던 걸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생각나는 풍경이다. 인생이 외롭고 쓸쓸하므로 삶은 더욱 더 뜨거워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시다.

'에너지 빈곤층에게 연탄 후원이 확 줄었다'는 기사 때문에 불현듯 이 시를 떠올렸다. 기사를 보면, 코로나19 여파로 연탄 후원을 하기 어렵다는 연락이 이어진다. 추위는 본격화하는데, 이번 겨울은 어려움을 겪는 이웃들에게 아주 혹독할 듯하다. 인천연탄은행의 경우 후원을 받은 연탄은 11월 말 현재 지난해에 비해 25% 수준이다. 반의 반 토막난 셈이다. 코로나19가 급감의 직접적 원인이다. 그동안 연탄 후원을 해오던 업체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불황을 이유로 올해는 못하겠다고 전한다. 코로나19란 놈이 급기야 어려운 이웃을 돕는 연례행사마저 막는다. 인천에서 연탄 후원을 받는 1530여 가구 중 90% 가량은 고령층이다. 이들은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공공근로나 폐지줍기 등을 못해 집에서 보내기 일쑤다. 그러니 추워진 날씨에 연탄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여기에 연탄 배달 자원봉사 발길도 뚝 끊겼다고 한다. 온정마저 사회적 거리를 두는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기관과 단체 등의 지원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

어느 시인이 읊은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으리'란 싯구가 절실한 요즈음이다. 인간의 자유를 억누르는 폭력을 겨울로,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봄으로 빗댄 내용이다. 곧 대자연의 법칙과 순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이다. 아무리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면서 우리의 자유를 옥죄더라도, 희망과 꿈마저 앗아가진 못하리라. 그 누구도 우리의 봄날을 막을 수는 없다. 겨울은 이제 시작이지만, 산 넘어 조붓한 오솔길에 봄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이문일 논설위원 ymoon5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