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년 즐겨 찾던 보신탕집·콜라텍…송도·청라 진출은 꿈도 못 꿔
혐오 등 부정적 인식과 원도심 상권 쇠퇴마저 겹치면서 사양길로
▲인천에서 영업하던 한 영양탕집 건물에 '철거' 표시와 함께 X자가 빨간색으로 그어져 있다. /사진=김원진 kwj7991@incheonilbo.com
▲인천에서 영업하던 한 영양탕집 건물에 '철거' 표시와 함께 X자가 빨간색으로 그어져 있다. /사진=김원진 kwj7991@incheonilbo.com

“지는 해 앞에 잠시 멈춰서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것은 신성(神聖, divinity)에 참여하는 일이다.”

인도 힌두교 경전 '우파니샤드' 구절처럼, 인천 원도심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사라짐에서 '아!' 하고 소리라도 내면 어떤 의미로 이어질 수 있을까. 그게 지는 해나 웅장한 산 그늘에 대한 얘기와는 조금 달라서 신성과는 거리가 멀지는 몰라도, 원도심 소멸 조각들을 영원함으로 남기기 위해 작은 탄성을 고민할 시기에 이르렀다.

 

▲'개고기'. 신도시가 용납하지 않는 이름

인천 연수구 보신탕 혹은 보양탕, 영양탕, 사철탕, 멍멍탕 집들은 송도교를 넘어 송도국제도시로 갈 수 없었다. 이름은 각기 달라도 연수구에서 개고기를 취급하는 곳들은 청량산이나 문학산을 끼고 명맥을 유지할 뿐, 송도국제도시 신도시 상권에 합류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민감한 개 식용과 도살 논의를 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전통시장처럼 개고기 취급 식당 역시 대부분 원도심에서만 소비되며, 차츰 원도심에서도 소멸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언급이다.

지난 13일, 가정집을 개조한 것으로 보이는 청량산 자락 보신탕집에선 중년 남성들이 반주 중이었다. 중간중간 여성들도 보였으나 비율로 따지면 남성 8에 여성 2 수준이었다.

보신탕집 주인 김현석씨는 “우리 가게에서만 봐도 알다시피 개고기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족 외식 메뉴와 거리가 멀어졌다. 주로 중년, 노년 남성들이 모임 성격으로 찾는다. 그러니까 젊은 가족들이 주로 사는 송도국제도시로 가게 이전이나 분점 논의 등은 업계에서 고려 대상이 못 된다. 원도심에서도 상권이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바로 옆 가든에선 20년 넘게 판 개고기를 메뉴에서 없앴다. 그 집은 흑염소와 삼계탕에 매달리고 있다. 흑염소가 개고기처럼 혐오 식품 취급을 받으면 나중엔 삼계탕만 팔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인천 대표 신도시인 송도국제도시와 청라국제도시 내 개고기 취급점을 온라인과 오프라인 경로로 따져보니 확인되는 곳은 많아야 1~2곳 내외. 개고기 취급 음식점은 보통 담당 구청에 일반음식점으로 사업자등록이 돼 있어 정확한 숫자 파악은 힘든 환경이다.

 

▲'콜라텍'. 정체불명으로 곧 사라질 이름

중년 이상 기성세대들이 청소년들로부터 물려받은 몇 안 되는 문화인 콜라텍은 베일에 싸인 공간이다. '콜라+디스코텍' 합성어인 콜라텍은 1990년대 청소년이 건전하게 놀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로 정부 주도로 시작했다가 크게 성공하지 못하고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콜라텍은 당시 잘나갔던 인천 시내 곳곳에 포진했고, 이들 지역이 상권 쇠퇴 등을 겪으며 기존 시설은 자연스럽게 노년층에게 돌아갔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 어른들이 찾는 콜라텍과 카바레는 구분하기 어려웠고, 해당 문화에 대한 연구 없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노는 유흥주점쯤으로 인식하고 말았다.

미추홀구에서 콜라텍을 운영했던 A씨는 “가게마다 다른데, 콜라텍 입장료는 아예 없거나 많아 봐야 3000원이다. 콜라 팔아서는 유지가 안 되고, 사교댄스 강습하면서 수입을 올린다. 웬만하면 술 안 팔고, 생각처럼 불륜 커플도 많지 않다. 저녁 6시면 문을 닫는 건전 업소다. 노인들 주머니 사정 어려운 시절이라 가게들이 하나둘 없어지고 있었는데 코로나19까지 겹쳐서 소멸 직전이다”고 말했다.

 

지갑 열 만한 손님 '소득 절벽' 노년뿐

보신탕집 80% 인구 감소 지역에
60대 이상 연간 근로소득 '급감'
어르신 대상 장사 노포·콜라텍 
지갑 가벼워 가격 인상도 '발목'

주로 젊은층에서 외면해 사양길에 접어든 개고기 전문 식당들은 원도심에서 꼼짝 못 하고 운명의 날만 짐작하고 있다. 십수 년 전만 하더라도 손주들의 것이었던 콜라텍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물려받으면서 전통시장 근처 건물 꼭대기 층이나 지하에서 조용히 존재하고 있었다. 개고기 음식점과 콜라텍이 원도심 대표 업종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들이 영업 중인 지역들은 하나같이 인구가 줄고 있다는 공통점을 확인했다. 40대 미만 젊은 세대가 도심 외곽으로 빠져나가면서 인구가 하락 중인 원도심 동네에선 중노년만 늘고 있다. 개고기 전문 식당과 콜라텍이 그나마 생존하는 이유다.

 

▲개고기와 원도심 상관관계, 보신탕집 80%는 인구 감소 지역

빅데이터 기반 맛집 검색 서비스를 활용해 인천지역 보신탕집 가운데 평점이 높은 상위 50곳 식당을 대상으로 도시와의 상관관계를 따졌다. 전체 일반음식점에서 개고기 취급 식당 숫자를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명 맛집 'TOP 50'을 표본으로 추출해 전체 특성을 추정하기로 했다.

50곳 식당들에서 78%를 차지하는 39곳 식당은 2016년에서 2018년 사이 인구가 줄어든 동들에 자리하고 있었다. 표본 식당들 소재지가 모두 32개 동으로 나타났는데 남동구 구월동, 부평구 부평동, 미추홀구 숭의4동 등 6개 동을 뺀 26개 동에서 인구 감소가 진행하고 있었다.

개고기 전문점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송도나 청라국제도시, 서창지구, 논현지구 등 신도시에서 장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숫자가 줄었다고 해도 인천 전역에 보신탕집이 어림잡아 백여 곳인데, 논이나 밭, 갯벌을 매립해 확장한 외곽 신도시 대부분에선 개고기 전문점 진입이 진행되지 않는 셈이다.

두 번째는 산이나 전통시장을 끼고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산과 전통시장, 두 지역 모두 중노년 상권의 핵심 항목들이다. 청년층 유출로 활력을 잃은 원도심에서 그나마 중노년층 소비로 떠받치고 있는 지역 경제 핵심 시설들이다.

 

▲산밑과 전통시장 잔치국수가 3000원인 이유, 소득 낮은 중년 중심

개고기 전문 식당 소재지와 그 주변 인구 감소 상관관계가 우연이 아니라면, 주된 연결 고리는 중노년 인구 비중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식당이 인천 산밑과 전통시장 주변에 포진한 것도 원도심 내 노후화된 상권의 한 단면으로 볼 수 있다. 청년층 인구 유출로 생긴 빈자리에서 중년·노년 상권이 싹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문제는 60세 이상부터 가파르게 곤두박질치는 소득 수준으로 지역 상권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부분이다.

20·30 등산객 증가로 서울 청계산, 인왕산 등에는 '레깅스' 족들이 뜬다지만 인천 산들에선 여전히 '스피커족' 중노년들이 대세다. 인천 중심부인 원도심에서 청년 인구 감소와 동시에 노년 인구 확대가 계속되면서 빚어진 결과다. 젊은 소비자들이 늘어 청계산, 인왕산 앞에는 파전, 두부 등 물가가 1만원 언저리까지 올랐으나 계양산, 문학산, 만월산 둘러싸고는 노포에서 만원 한 장이면 국수에 전까지 곁들여 먹을 수 있다.

국세청에 신고된 2018년 연간 근로 소득 자료에 따르면 해당 연도 인천지역 연령별 근로소득은 20대 2015만원 30대 3328만원, 40대 3928만원, 50대 4038만원으로 상승하다 60대 이상에선 2462만원으로 쪼그라든다. 노년으로 진입하며 소득이 낮아지는 현상은 도시 인구 연령이 높아질수록 지역 상권이 축소되는 근본 원인이다.

 

▲입장료 1000~3000원 콜라텍, 노년 소비 생각하면 지역 상권 유지 못 해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 직전인 지난 22일 찾아간 인천 한 콜라텍에선 입장료가 1000원이었다. 이곳 주인 A씨는 “코로나19로 행정기관에서 단속도 심하고 손님들도 줄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취미 생활로 춤추러 와서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야 1만원 내외다. 나 역시 노년에 접어들어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고 용돈 번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갈수록 심해지니 문을 닫아야 하나 걱정이다”고 전했다.

/이주영·김원진·이창욱 kwj799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