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해 팔려고 망치로 탕
구경하던 12살 다리 잃어
이후 호구조사 때면 부친
'우리집 두개반 산다' 비수
아들도 피해, 억장 무너져
▲ 지뢰 폭발물 피해로 한 쪽 다리를 잃은 진옥자씨가 피해 참상을 알리고 있다. 작가:김문정

한국전쟁 이후 70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전쟁이 남겨 놓은 상흔들과 마주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팔이 없는 이는 냇가에서', '발이 없는 이는 동네 야산에서'… 그렇게 예견할 수 없던 지뢰 폭발물의 피해자가 됐고 이들의 아픔은 온몸 구석구석 장애라는 이름으로 남겨졌다. 지뢰 피해자들은 전쟁의 비극과 피해 참상을 알리기 위해 당당히 카메라 앞에 섰다. 인천일보는 지난 1일부터 5일까지 연천 폐벽돌공장(DMZ피스 브릭하우스)에서 열린 '인생나무, 인생사진展'의 참여한 지뢰 폭발물 피해자 9인을 만나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조명한다.

 

#우리 집은 두 개 반이 삽니다

연천군에 사는 진옥자(65·여)씨는 여전히 악몽같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다. 진씨는 지뢰 피해로 다리 한쪽을 잃고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고통 속에 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비극의 시작은 그의 나이, 불과 12살 되던 해에 벌어졌다. 당시 발발한 한국전쟁은 온 국민을 가난과 고통으로 병들게 했다. 그때만 해도 버려진 고물이나 전쟁 후 버려진 고철을 내다 팔면 한 끼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진씨가 살던 주변으로는 군부대가 자리해 있어 동이나 구리 등과 같이 값이 꽤 나가는 고물을 구하는 일이 쉬웠고 철을 팔아 얻은 돈은 부족한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됐다. 하루는 이웃 주인이 산에 갔다 여느 때처럼 고물을 주워왔다. 고물은 군부대에서 쓰고 남은 포탄이었고 이웃 주인은 이것을 분해해 내다 팔 생각이었다. 분해하려 망치로 두드린 순간, '쾅'하는 굉음 소리에 포탄이 터져버렸고 이 과정을 주변에서 지켜보던 진씨는 결국 불발탄 피해를 입고 말았다.

“포탄이 터지고 제 몸이 저만치 날아가 있더라고요. 포탄을 분해하던 마당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고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옆에서 같이 지켜보던 동생부터 찾아 헤맸죠. 언니한테 동생 칠성이를 찾으니 언니가 한마디 하더라고요. 옥자야 니 다리 좀 봐. 그때 한쪽 다리가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동생부터 찾았던 거 같아요. 결국 제 다리도 잃고 동생마저 하늘로 보내게 됐습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부친은 술로 세월을 보냈고 가족은 절망에 빠져들었다. 다리를 잃은 진씨에게 학급 친구들은 손가락질해댔다. 한창 예민할 나이에 찾아온 '장애'라는 꼬리표는 그를 병들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건 가족의 외면이었다. 종종 지역 내 호구조사를 벌일 때면 그의 부친은 “우리 집은 두 개 반이 삽니다”라는 말로 답변하곤 했다. 곧 모진 말들은 비수처럼 진씨의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억장이 무너졌죠.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듣는 그 말은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신세가 됐죠. 곧잘 공부했던 저는 '절름발이'니 '병신'이니 하는 친구들 놀림에 결국 학업마저 중단하게 됐죠.”

더 큰 비극은 그가 가정을 꾸린 뒤 찾아왔다. 대물림 되지 않길 원했던 지옥 같은 고통이 그의 아들에게도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제 아들도 지뢰 폭발물 피해자입니다. 산사태에 떠밀려 온 지뢰를 지뢰인지 모르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폭발물 피해를 입고 말았죠. 저처럼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고통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몸속을 헤집는 파편들은 살결을 스치기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날이 추워지는 요즘, 유독 심해지는 통증에 밤잠을 설친다는 진씨. 50년 인생을 송두리째 날린 그에게 주어진 보상은 고작 2000만원이 전부였다. 진씨는 본인뿐 아니라 아직도 무수한 지뢰 피해자들이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다.

“아들의 지뢰 사고 이후 보상제도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고통받은 세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지원이었죠. 그마저도 기록이 없어 피해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습니다. 저처럼 보상제도를 인지조차 못 하는 피해자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사진전에 나서게 된 계기도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였습니다.”

인생나무 인생사진전에서 작가이자 모델로 참여하게 된 진씨는 지뢰 폭발물 피해자들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용기를 냈다.

“평화나눔회와 인연을 맺게 된 이후 지뢰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고민을 해왔죠. 그러다 유엔에 우리나라 지뢰 폭발물 피해자가 0명으로 보고돼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됐고 우리 지역에만 해도 5~6명의 폭발물 피해자가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죠. 뒤통수를 때려 맞은 기분이랄까. 처음엔 사진전 참여를 고사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려야겠단 생각에 카메라 앞에 나서게 됐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인 분들에게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숨지 마세요.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올 때입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