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시국이 살얼음판 위에 올라앉아 말 그대로 일촉즉발, 수능 시험마저 목전이다. 비대면 대화로나마 긴장을 풀자고 농담을 시도하면 똥볼이 되어 운동장 밖으로 튕겨 나간다. 영상을 송출하는 시차 때문인지 웃음 박자가 엇나가기 일쑤다.

허황된 소리를 몇 번 되풀이하다가 지레 접어 버린다. 혼자 거울보고 고스톱 맞고를 칠 수 있다는 시시껍절한 조언 따라 대화도 그리해야 할 판. 누가 듣건 말건 혼자 생각인 양 싱거운 소리를 꺼내 보려 한다. 헛소리는 예민하고 심각한 주제와 궁합이 맞는다. 우리 인천교육에서 제일 시급한 현안, 아무래도 학교 신축 민원이겠다.

원도심은 공동화하고 신도시는 과밀 포화, 인천만 그렇지는 않다. 도시가 팽창을 멈추지 않는 한 나라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 교육부는 '학교총량제'를 부인하고 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인천 학교 전체수를 묶어 놓고 새로 지으려는 숫자만큼 학교를 폐교하라는 방침. 제도가 살아 있건 아니건 세상사 재원과 인력에는 언제나 총량이 있다.

중앙정부가 삼천리 방방곡곡 학교 신설 수요를 모조리 파악하고 시급성 순위를 매기고 있다. 교육부 '중앙투자심사위'는 가용 총량을 기준삼아 신도시 학부모들의 아우성을 잘라내기 급급하다. 교육청들은 '중투' 앞에서 목을 빼고 “재수, 삼수는 필수, 대여섯 번째 기어이 통과”를 자축하는 일을 반복한다.

집콕 생활이 옛 게임 블루마블을 다시 불러냈다. 참가자들은 일정액을 나눠 갖는다. 주사위를 굴려 세계를 유람하면서 도시건축에 투자한다. 운이 따라야 하지만 예측하고 계산하는 데 능통해야 한다. 상대를 보면서 '푸른 구슬'인 지구 전체를 조망하는 시야를 확보해야 승자가 된다.

학교 신축 문제는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총량과 지역에서 필요한 수요를 조화하는 고난도 '게임'이다. 어차피 중앙정부가 허락할 총량에는 임계한도가 있다. 지금은 도시부터 만들고 학교를 넣는 방식이다. 순서를 바꿔 상상해 본다. 지역의 입장에서 정부가 줄 수 있는 할당량을 선배분받는다. 교육청과 지자체가 협의해가며 학교를 포함해 도시를 만들어 간다.

큰 그림으로 보면 어떻게든 학교 총량을 많이 쥐고 있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푸른 구슬(Blue Marble): 지구'가 처한 상태가 말해주듯 한계가 있다.

모두가 이기는 게임은 없지만 모두가 지는 판은 어디든 있을 수 있다. 단판 승부에 집착하지 않아야 승패를 떠나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이번 판과 다음 판 승자가 뒤섞일수록 흥행도 오래간다. 도시가 성쇠하는 주기가 짧아진다.

현실은 게임판 위에서 짓고 부수듯 쉽지 않다. 다만, 자원 총량을 나눠 쓰자는 합의는 가능하다. 함께 지구를 내려다보듯 인천을 조망하면서 판 자체에 참여하는 주인들을 늘려가는 게 관건이다.

원도심과 신도심 대립 구도로는 답이 안 나온다. 같은 구 안에서도 과밀과 과소가 공존한다. 학교는 적정규모라야 교육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학생수를 기준으로 추계하면 학교를 통폐합해야 할 지역이 속출할 것이다. 지금 신도시라고 하는 지역 중 일부에도 적용할 가까운 미래다.

10년 이후를 내다보면 지금 '게임판'을 펼쳐 시뮬레이션을 시작해도 늦다. 블루마블. 학교와 도시시설을 연계해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는 모의실험이 시급하다. 이왕 시작한 허튼 소리. 컨테이너교실에서 진화해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는 '모듈러 학교' 사례를 주목한다.

중국에서 실험했다는 '걸어서 이동하는 건물'이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또 어떠랴.

한 동네에서 학교가 공회당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문화의 중심이었다. 학교에 마을이 필요한 '복합화시설'을 들이는 일도 의미가 있다. 마을과 학교가 공간을 공유하며 수영장이 생기고 카페가 들어서는 일도 늘었다. 같이 살아가려고 하다보면 여러 길이 열린다. 인천 어느 곳에서나 학교와 도서관, 복지와 체육, 문화시설 혜택을 골고루 누리는 큰 판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게임판'을 펼치려는 욕심에 농담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남는 뼈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