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조업 근간 주물, 다시 뜨겁게 달궈야

수도권 최대 … 청라 인근 서부공단 위치
40여년전 부터 모여들어 전성기 구가

업종 쇠퇴·주택확장·환경문제 위기
정부 정밀조사·종합대책 마련 촉구

주 52시간·최저임금 … 인력 유지 벅차
신규 인력 공급도 없어 대 끊길 판
최근 관계기관 지원 협약 '실낱 희망'

생산공정 특성상 토·공휴일도 운영
전기요금 할증 부담 … 적정요금 촉구
▲ 자동차·기계·조선 등 거의 모든 산업의 부품을 가공하는 주물업종은 대표적인 뿌리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고철 등 원자재를 높은 온도로 가열해 부품을 생산하는 주물업종은 공정 특성 상 토요일 및 공휴일도 생산공정이 멈추지 않고 진행되고 있지만 전기사용료는 요금제와 계절에 따라 높게 책정돼 업계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사진제공=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 인천 경서동 청라국제도시 인근 서부공단 주물단지는 수도권 최대 주물단지다.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은 국내 최초 주물업종의 클러스터를 결성하고 대한민국 제조업의 근간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매년 조합원을 대상으로 해외연수를 진행하며 경쟁력을 높였던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은 이제 주택단지 확장과 환경이슈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인천 경서동 청라국제도시 인근 서부공단 주물단지는 수도권 최대 주물단지다. 40여년 전 서울 영등포와 뚝섬 등지에서 이전해온 업체들이 중심이 돼 쇳물로 자동차·기계·선박용 부품 등을 만든다. 뿌리산업 본거지인 이곳 경인주물단지 입주 업체들은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을 결성해 국내 최초 주물업종의 클러스터를 결성하고 대한민국 제조업의 근간으로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주물특화단지로 인천시 제1호 협동조합인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은 연간 420억원 규모의 규소철, 합금철, 규소 등 100여개 품목을 공동구매하고 전 조합원사의 참여를 통한 원·부자재 창구 일원화로 가격변동에 대한 대응력 강화 및 원가절감, 생산성 향상에 나섰지만 자동차·조선·기계 등 전통 제조업의 쇠퇴와 주택단지의 확장으로 인한 환경 이슈로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쇠퇴하는 제조업, 뿌리산업 진흥에 힘써야

뿌리산업은 말 그대로 산업의 뿌리다. 자동차·기계·조선 등 거의 모든 산업의 부품을 뿌리기업이 가공한다. 뿌리산업이 붕괴되기 전에 정부는 하루빨리 정밀 실태조사를 벌여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뿌리산업중 주물은 인력난이 가장 심한 업종이다. 열악한 작업 환경 탓에 외국인조차 일하기를 꺼린다.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상당수 입주 기업이 인력을 줄이고 있다.

현재 주물업계는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인력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수작업이 많은 산업 특성상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대규모의 경우 로봇 등 자동화로 전환하고 있지만 중·소규모의 경우 여전히 도제식으로 기술을 전수하며 업종을 유지하는 탓에 숙련된 인력을 유지하는 것도 벅차다. 주52시간 근무제 실시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도 업계를 움츠리게 하고 있다.

주물업계 주요 거래처인 자동차 산업 경기가 나쁘고, 가솔린 등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산업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는 점도 위기라고 했다. 국내 전체 주물업계 매출 중 절반가량이 가솔린 엔진 블록 등 자동차 주물 부품에서 발생한다. 전기차로 자동차 시장이 바뀌면 이 수요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심각한 경영난을 겪는 것은 주물업체만이 아니다. 도금 열처리 단조 등 다른 뿌리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현재 뿌리산업 종사자 중 40대 이상 노동자가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도제식으로 운영되는 주물의 경우 훈련된 신규인력 공급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아예 업계 자체가 대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

양태석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제조업의 밑바탕인 뿌리산업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며 “산학협력과 연구개발 지원 등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편 코로나19 위기 극복에 한국 제조업이 핵심 역할을 맡으면서 제조업을 근간으로 한 우리 산업구조가 뿌리산업 육성에 힘을 모으기로 한 점은 다행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와 산업통상자원부,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최근 뿌리산업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중소기업 애로사항을 대변하는 중기중앙회와 뿌리산업 정책을 수립하는 산업부, 뿌리기업에 대한 기술 및 인력지원을 하고 있는 생산기술연구원과의 최초의 공식적인 3각 협약이다. 협약에 따라 산업부는 관련법령 개선, 지원예산 마련 등 차세대 뿌리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방침이다. 생산기술연구원은 뿌리기업 애로기술 해소 등 현장지원을 맡는다.

또 중기중앙회는 올해부터 신설되는 200억원 규모의 '소재·부품·장비 산학협력단' 지원 대상인 뿌리기업을 발굴한다. 해당 사업은 대학이 보유한 뿌리기술을 기반으로 뿌리기업이 겪고 있는 애로기술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제품. 몰드베이스, 실린더라이너, 케이싱, 펌프케이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제품. 몰드베이스, 실린더라이너, 케이싱, 펌프케이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뿌리산업을 위한 전기요금 체계 절실

주물·열처리·단조 등 뿌리산업 업종은 공정 특성 상 토요일 및 공휴일도 생산공정이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전기사용료는 공휴일의 경우 최대부하시간대 사용전력을 경부하시간대 기준으로 계량하는 반면, 토요일은 중간부하시간대 기준으로 계량하고 있다. 중간부하시간대 요금은 경부하시간대 요금에 비해 요금제와 계절에 따라 8~86% 이상 가격이 높게 책정돼 뿌리산업 업종의 전기요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주물업계에서는 기업들이 근로기준법에 따라 동일하게 토요일 근무에 대한 휴일수당을 지급하는데 반해, 전기요금은 토요일이 공휴일보다 높은 단가를 적용받고 있다며 토요일 생산이 불가피한 뿌리산업은 인건비와 전기료 등 이중고에 시달리며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태석 이사장은 “한전이 전력 부족사태를 예방하기 위해 동절기와 하절기 전기료 할증요금을 적용하면서 평월 사용량과 큰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적은 6월과 11월 계절할증을 적용하고 있다”며 “뿌리산업 기업들은 연중 일정한 양의 전력 수요를 가지고 있어 계절별 전력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적다”고 주장했다.

조합에서는 한전의 계절 전력요금 할증이 수요관리를 통한 신규투자비 절감 및 자원이용 합리화를 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만큼, 수요예측이 용이한 뿌리산업에 대해 계절전력요금 할증을 적용할 당위성이 적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 이사장은 “한국 제조업의 근간이 되는 뿌리산업의 원가 비중 중 전기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들 산업의 존속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기료 적용기준의 변경이 절실하다”며 “산업용 전기료도 상당 부분 오른 만큼 농업처럼 뿌리산업에 대한 적정한 요금제를 제시할 필요가 크다”고 말했다.

 

 


 

“정부, 뿌리산업 특별한 관심을 … 기초가 있어야 4차 산업도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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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태석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
▲ 양태석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청라 발전·환경규제로 밀려날 처지

숙련된 고령 인력 유지 지원책 절실

양태석(대성주철공업㈜ 대표이사) 경인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주물 등 뿌리산업에 대한 정부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책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현재 서부공단 주물 관련 업체들은 최저임금, 근로시간 규제 등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경인주물공단은 자동차·기계·조선 등 제조업의 부품을 납품하며 대한민국 산업화 시대를 이끌어왔다.

양태석 이사장역시 대를 이어 대성주철공업을 이끌며 주물업계를 대표하는 경영인으로 성장했다.

양태석 이사장은 “주물업종은 열처리, 단조 등 업종과 함께 뿌리 제조업를 구성하고 있다. 뿌리가 있어야 줄기도 있고, 잎도 있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듯이 뿌리산업이 제조업 분야의 기초를 담당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인데, 4차 산업은 근본적으로 주물, 열처리 등 뿌리산업 없이는 안 된다. 뿌리산업이 가장 중요하고 꼭 필요한데, 지금 사정이 굉장히 어렵다”고 말했다.

경인주물공단은 한 때 전국 최대의 주물전용단지로 꼽혔지만 인천국제공항 개항과 청라국제도시 확장, 첨단산업 기지가 인근에 들어서면서 공해업종으로 낙인이 찍혀 현재 20여곳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청라국제도시의 팽창과 공단 시설 노후 속에 환경 규제는 심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인건비 상승, 근로시간 규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기존 입주업체들이 주물업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수도권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재 여건상 신속히 추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뿌리산업의 오랜 현안인 인력난 해소를 위해서는 앞으로 숙련인력인 고령자의 유지 지원정책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고용유지 지원을 확대하고, 신규인력의 원활한 유입을 위해 뿌리산업 교육기관을 설립해 조합이 직접 숙련인력을 활용한 현장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높여가고 있다.

양 이사장은 “공단 입주업체들이 환경규제 관련 법규 변경 사항 등을 잘 숙지하고 조합과 함께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서도 “뿌리산업 업종은 정부에서 특별한 관심과 별도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칭우 기자 chingw@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