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건축물 수난사, 210동의 기록 10. 근대문화유산과 공존하려면] 부서 '칸막이' 넘고 주민에겐 '당근' 제시해야
[근대건축물 수난사, 210동의 기록 10. 근대문화유산과 공존하려면] 부서 '칸막이' 넘고 주민에겐 '당근' 제시해야
  • 이순민
  • 승인 2020.11.29 19:15
  • 수정 2020.11.30 10:13
  • 2020.11.30 인천판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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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인천시 '면' 단위 지구단위계획 2009년 건축공간연 '사업 중복·연계성 미흡' 평가 지금도 유효
조세 감면·보조금 지원 등 혜택 권장시설에만…참여 유인 적어
▲ 최성연 선생의<개항과 양관역정>.

1959년 '개항과 양관역정'이라는 책이 발간됐다. 향토사학자 최성연(1914~2000) 선생이 서양식 건물(양관)을 비롯해 인천 근대건축물을 연구한 결과물이다. 사진과 도면, 행정자료 등을 첨부한 건축사의 선구적 저서다.

1883년 개항으로 인천에는 근대 문물이 밀려들었다. 외국인 공간인 조계는 인천 사람들의 터전을 비집고 들어왔다. 개항장은 각국·청국·일본 조계로 나뉘었고, '도성의 인후'로 불렸던 인천은 '모던 건축'들로 채워졌다. 여느 개항장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시대는 인천을 근대건축의 도시로 만들었다.

현대사의 광풍은 근대건축물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최성연 선생이 “인천의 상징”이라고 언급했던 존스톤 별장(인천각)도, 세창양행 사택(옛 인천시립박물관)도 한국전쟁 때 포화에 휩싸였다. 급속한 경제 발전과 개발의 시대는 근대건축물을 해체 또는 대체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2000년대 접어들어 근대문화유산을 둘러싼 논의의 장이 열렸지만, 철거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건축과 철거라는 상반된 시대를 지나 근대건축의 도시 인천은 '제3의 길'을 마주하고 있다.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보전하고 활용하느냐의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2001년 등록문화재 도입을 기점으로 근대문화유산 관련 제도적 기반이 다져졌지만 결국 실행은 지역적 차원의 문제로 남았다.

인천시는 지난 2003년 '개항기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을 지정했다. 개별 문화재만 '점' 단위로 보호하는 방식이 아닌 특화 거리 중심의 '선'과 지구단위계획을 통해 '면' 단위로 관리하는 개념이었다.

출발 자체는 선도적이었지만, 행정은 한계를 노출했다. 국책연구기관인 건축공간연구원은 지난 2009년 '근대건축물 활용을 통한 지역활성화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인천시 중구 일대 근대건축물 관련 계획과 사업의 내용이 중복되고, 서로 간의 연계성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짚었다. 특히 “인천시의 사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처럼 다양한 관리 주체가 각각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부서 간 협의 체계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진단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지적이다.

끊이지 않는 철거 또한 쓰임새의 문제로 귀결된다. 소유자의 참여와 시민의 관심은 근대건축물 활용의 동력이다. 그러려면 서울 북촌의 사례처럼 경제적 가치 상승과 지역 활성화 효과가 뒤따라야 한다. 인천 중구 신포동·동인천동·북성동 일원은 지난 2010년 '개항장 문화지구'로 지정됐지만, 조세 감면이나 보조금 지원 등의 직접적 혜택은 문화예술과 같은 권장시설에만 적용된다. 그나마 올해 보조금 지원 사업은 1건, 예산은 3000만원에 그쳤다.

미국 연방정부·지방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으로 역사 보존과 연계해 지역경제를 재생하는 '메인스트리트 프로그램'은 활성화 측면에서 시사점을 준다. 이 프로그램은 쇠퇴한 지역을 중심으로 근대문화유산 보존 기준을 제시하면서 제도적 혜택을 제공한다. 특히 지역 주민의 자발적 결정 과정이 근간이 된다. 근대건축물 활용의 필요충분조건은 결국 주민의 공감일 수밖에 없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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