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경

그때, 나는 묻는다

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

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

그때,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

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

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밭을 돌아 서로에게 갈 때

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

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누구에게나 사랑하고 이별하는 시간은 있다. 불같이 뜨거웠거나 삭풍처럼 차가웠던 순간들은 생의 통과의례처럼 우리를 성숙의 시간으로 이끌어왔다.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열정이라는 이름 아래 추억의 사진첩 속에 아스라이 녹아든다.

사람들은 서로 만나,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또는 '차갑거나 뜨겁거나' 하며 희로애락 살아간다. 그 모든 순간들은 살아있는 존재에게만 허락된 생애의 잔치일 것이다. 그 순간들이 아니라면 우리 삶은 잿빛 우울한 나날 외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우리에게 일어나고야 말 충격적인 사건,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그것이 사는 일이므로 눈물의 시간조차도 아름답고 고맙다. 허수경의 시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게 얼음장 같은 삶을 선물해 준 그도 알 수 없는 이유를 남기고 아스라이 떠나갔다. 지금 그를 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왜 그때, 그토록 차가웠어?' 라고 물으면, 그는 '그때, 너를 사랑했으니까...'라고 대답할 것 같다. 사람마다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고 표현하는 화법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알고 있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어쩌면 우리 사는 세상은 환희와 상처가 길항하는 역설의 삶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들은 순간순간의 빛나는 사랑과 아픔을 촘촘히 교직하며 운명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알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그때 그 아픔에 감사한다. 잠시 머물렀던 사랑에 감사한다. 쓸쓸하게 거닐던 눈물에도 감사한다. 우리가 세상을 끝끝내 살아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허수경 시인은 좋은 시를 여럿 남기고 두 해 전 하늘로 돌아갔다.

/권영준 시인, 인천삼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