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천기독병원 100년, 로제타 홀을 기억하다
[기고] 인천기독병원 100년, 로제타 홀을 기억하다
  • 인천일보
  • 승인 2020.11.26 17:52
  • 수정 2020.11.26 17:52
  • 2020.11.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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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신 인천기독병원 원목

인천을 통해 한국에 입국한 의료 선교사로 우리나라 의료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분 중의 한 분이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입니다. 펜실베니아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선교사님의 사역보고를 듣고 감동하여 자신도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료선교사가 될 것을 그녀는 결심합니다. 이 분에 대해서 인천시민이 더 특별하게 관심을 가져야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1921년 인천에 부인병원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1885년 4월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한 일행 중에는 닥터 '스크랜튼'(William Benton Scranton)이 있었습니다. 서울 도착 후에 광혜원에서 잠시 환자를 치료했던 그는 같은해 9월 정동에 한옥을 구입해 사람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이는 광혜원은 모든 계층을 진료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그곳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이 왕족이나 고위관료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고종황제는 스크랜튼이 시작한 이 의료시설에 시병원(施病院)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시병원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치료하는 공간을 구별하였지만 여성환자의 증가로 여성을 위한 시설과 여의사가 필요하게 되자, 미국 감리교회는 1887년 여의사였던 '메타 하워드'를 조선에 파송합니다.

스크랜튼은 1888년, 여성 의료시설 '보구여관'(普求女館)을 시작하고 메타 하워드는 이곳의 책임자가 됩니다. 사역 초기부터 몰려드는 환자들로 과로에 시달리다 병을 얻게 된 메타 하워드가 1889년 미국으로 돌아가자 미국 감리교회는 보구여관을 책임질 여성 의료선교사를 급하게 찾아, 하워드의 후임으로 조선에 파송하는데, 이 때 조선에 오게 된 선교사가 '로제타 홀'이었습니다. 1890년 10월13일 로제타 홀은 두 달의 긴 여행 끝에 제물포항에 도착합니다. 10월14일에 서울 정동에 도착하고, 그 다음날부터 진료를 시작합니다.

로제타는 환자의 맥박과 체온을 재고 진찰한 후 약을 조제했고, 또 수술하는 등의 모든 일을 혼자서 하였습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치과, 정신과 등의 온갖 질병을 가진 여인들을 치료하였습니다. 자궁수술을 비롯해 종양제거, 백내장수술, 언청이수술, 종기수술 등의 수술도 집도하였습니다. 첫 10개월 동안 2359건의 진료를 했고 왕진이 82건, 입원환자는 35명, 처방전 발행건수는 6000여건이었습니다.

후에 로제타의 남편이 된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도 의료선교의 소명을 가지고 의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 1891년 12월 13일 조선 땅에 첫발을 내디딘 후, 이듬해 3월부터 관서지방을 여행하며 환자들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임스 홀 사역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청일전쟁 발발로 평양이 치열한 전쟁터가 되자, 그는 밀려드는 부상병들을 치료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게 되고, 이질까지 걸려 서울로 이송되어 치료 받던 중에 1894년 11월24일 소천했기 때문입니다.

로제타 홀을 사랑해 한국을 선교지로 선택했던 제임스 홀의 생애는 너무 짧았습니다. 1891년 12월 서울도착, 1892년 서울에서 로제타 홀과 결혼, 1893년 11월 아들 셔우드홀 출산, 1894년 사망까지, 3년 사역하고 순교했지만, 그의 사역은 평양 선교를 여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남편 사후 로제타는 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조선을 사랑했던 그녀는 친지, 동료, 독지가의 도움으로 마련한 기금을 평양에 보내 제임스 홀을 기념하는 병원을 세웠고, 1897년 11월10일 다시 조선에 돌아와 서울과 평양에서 부녀자와 아동을 치료하였습니다. 그녀가 시작했던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현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습니다. 1933년 로제타 홀이 43년의 사역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때, 당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다수의 언론들은 그녀를 조선의 은인이라 칭송하며 그녀의 은혜를 입지 않은 조선사람은 없다고 보도합니다.

지난 10월13일에는 로제타 홀 내한 130년을 기리는 행사가 인천에서 있었습니다. 11월24일은 제임스 홀이 소천한 날입니다. 조선에서의 그의 사역은 3년이었지만, 부인과 해주에 병원을 세워 결핵환자를 치료했던 그의 아들 셔우드 홀의 사역까지 기억한다면, 우리는 제임스 홀을 소홀히 여길 수 없습니다. 특별히 인천은 로제타 홀이 남한에 세운 유일한 병원인 인천기독병원이 있는 곳입니다. 인천기독병원의 100년은 로제타 홀의 의료선교 130년을 기억하게 해주며, 스크랜튼부터 시작한 의료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살펴보게 하는 역사입니다.

인천시 중구 문화 유산의 흔적이 쌓여 있는 거리에 의료 선교 135년의 흔적도 함께 쌓아두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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