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몽니'에 관한 한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미국의 트럼프다. 대선 불복과 정권이양 거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작심한듯 시리즈로 몽니를 구사하고 있는데, 상식과 관행을 의식하지 않는다. 게다가 타이밍이 썩 좋지 않다. 패장이 부리는 몽니 만큼 추한 것은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주 중앙은행의 비상대출 권한을 중단시키고, 잔여금인 4550억 달러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금줄을 눌러 바이든 당선인의 경제회복 드라이브에 타격을 입히기 위한 '재 뿌리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사이버•기간시설안보국(CISA)의 크레브스 국장을 해임했다. “11월3일 선거는 가장 안전한 선거였다. 표가 삭제•분실됐다거나 훼손됐다는 증거가 없다”는 성명을 낸 것에 대한 보복인 셈이다. 민주당은 “한심한 일이지만, 민주적 절차를 보호하려는 것은 (트럼프에게) 해고 사유가 되리라는 점은 슬프게도 예상됐던 일”이라고 조롱했다.

앞서 9일에는 인종차별 반대시위 대응과 해외주둔 미군 감축 등에서 이견을 보여온 에스퍼 국방장관을 해임하고 자신의 심복인 밀러를 임명했다. 국방부 고위직 3명도 줄줄이 내치고 새로운 인물들을 배치했다. 임기를 70여일 남긴 대통령이 안보수장을 바꾼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 CNN은 “트럼프의 남은 임기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난폭하고 고삐 풀린 시간이 될 것임을 상징하는 첫 조치”라고 평했다. 이를 입증하듯, 트럼프는 지난주 밀러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을 감축하라”고 명령했다.

몽니는 '심술을 부리고 딴지를 걸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언론의 미국 관련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전례 없는 일이다.

몽니의 국제화라고나 할까. 어찌됐든 트럼프의 몽니가 여기에 그칠 것 같지는 않다. 혼란의 불씨를 추가로 뿌려놓고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리는 내년 1월20일까지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시기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안보 전문가 맬컴 낸스는 대선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트럼프가 권력을 잃으면 '도기 가게에 대형 망치를 들고 온 악동'처럼 미국을 망치는 데 남은 임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의 위상을 고려할 때 망치의 불똥이 다른 나라로 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가 이어서 어떤 몽니를 부릴지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지막까지 근심거리를 제공하는 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