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캠프마켓 개방 앞서 현장 찾아 구조물 살리기 위한 선별작업
인천시 대부분 문헌 등에만 의존…언급 없는 건물 기초 조사부터 배제

 

일제강점기 무기공장인 ‘조병창’이 들어선 이후 81년 만에 개방된 인천 부평미군기지(캠프마켓) 남측 출입문으로 들어서면 오른편에 ‘T’자 형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 팻말에 “조병창 근로자 병원으로 이용됐다는 이야기도 있음.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2층과 1층 일부가 소실됐음”이라는 설명이 붙은 건물이다. 

지난달 24일 캠프마켓을 함께 방문한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는 “과거 사진과 건물 구조로 보면 일부가 파괴된 조병창 병원 건물을 미군이 보수해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제되지 않고 현대사로 이어진 역사적 공간이자 유산”이라며 “조병창 공장과 병원은 강제노동 현장이면서 조선인이 겪었던 참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정밀 분석으로 연원을 밝히고 상징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캠프마켓에선 지난달 개방을 앞두고 문화재청 주관으로 근대건축물 조사가 벌어졌다. 토양오염 정화 과정에서 기존 건축물 철거가 불가피해지자 현장조사를 거쳐 존치·철거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문화재청은 현재 개방된 구역(10만804㎡)에 남아 있는 건축물 22동 가운데 3동과 야구장 관련 시설에 보존을 권고했다. 여기엔 조병창 병원으로 추정되는 건물도 포함됐다. 인천일보가 입수한 문화재청의 ‘군 주둔지 내 근대건축 시설 일제조사 용역 보고서(2012)’에는 “일제강점기에 전략적으로 조성된 군수시설인 건축물이 현재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언급돼 있다. 미군 건물 목록을 통해 당시 배치도로 파악된 93동 건물 가운데 38동은 건립 연대가 ‘1952년 이전’으로 기록됐다.

캠프마켓 조사는 철거 위기를 맞은 이들 근대건축물의 가치를 따져보고 보존 여부를 판단한 선별 작업이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근대건축물 살생부’나 다름없다. 다만 ‘살(殺)’보다는 ‘생(生)’에 방점이 찍혀 있다. 수년간에 걸친 문헌 분석과 현장 전수조사, 역사적 검증을 바탕으로 근대건축물을 살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류윤기 시 부대이전개발과장은 “조사 결과를 놓고 ‘캠프마켓 시민참여위원회’ 의견 수렴 절차를 밟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근대건축물 조사는 수십 차례 진행됐다. 이들 대부분은 현장 조사를 최소화한 채 기존 문헌을 취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관련기사 3면

가장 최근이었던 인천시 건축자산 기초조사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발간된 ‘인천시 건축자산 기초조사 및 진흥 시행계획 보고서’를 보면 문헌조사 등으로 근현대건축물 819건을 추린 채 건축자산으로 선정한 492건만 현장 조사를 했다. 기존 문헌에 언급되지 않은 건축물은 기초조사 단계부터 배제됐고, 후보군은 인터넷 ‘로드뷰’ 등으로 현존 여부를 조사해 건축물 상태나 연혁 파악은 건너뛴 방식이었다.

캠프마켓의 ‘근대건축물 살생부’는 문화유산 조사의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 모두를 보존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에서 현장에 기반한 전수조사와 전문가 심층 연구로 가치를 판단하는 방식이다. 근대건축물 보존에 대한 공론화도 뒤따라야 한다.

손장원 인천재능대 교수는 “당장 인천 전역에 대한 조사가 어렵다면, 권역별로 심층조사를 시작해야 한다”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조사와 공론화가 근대건축물을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이순민·김신영·이창욱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