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유린 책임 75년이나 방치·한일 좋은 이웃 관계도 저해"
▲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 현장인 미쓰비시 중공업 나가사키조선소의 제3드라이독(dry dock) /연합뉴스
▲ 미쓰비시중공업 나가사키 조선소의 독신자 숙소인 쇼와료(昭和寮) 마당에 있는 원폭 피해자 추모비에 한반도 출신으로 추정되는 희생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맨 오른쪽에 '이승우'(李承宇)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이병학'(李炳学)에서 성을 일본식으로 바꾼 것으로 추정되는 '李藤炳学'이라는 표기도 보인다. /연합뉴스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이 일제 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시민이 이 회사 사장에게 인식 변화를 촉구하며 보낸 편지가 확인됐다.

징용 배상을 촉구하는 일본 시민단체의 선전 활동인 이른바 '금요행동' 참가자 가와미 가즈히토(川見一仁·69) 씨는 한국 대법원이 미쓰비시중공업에 내린 징용 판결 2주년을 앞두고 이즈미사와 세이지(泉澤淸次)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에게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을 지난 19일 익일 특급 우편으로 발송했다.

가와미 씨는 "귀사의 오래된 사보는 1945년 8월 당시 합계 34만7천974명이 미쓰비시 전체에 소속된 것으로 기록했다고 들었다. 그 35만명 가운데는 279명으로 생각되는 나고야(名古屋)미쓰비시·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녀들이 포함돼 있다"며 그늘진 역사를 직시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그녀들 한 명 한 명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것은 22세기를 향해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개척해 가는 젊은 사원에 대한 신의이며 책임이기도 하다"며 징용 배상이 미쓰비시중공업의 미래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특히 한국에 대한 혐오 감정을 조장하는 세력 등의 비난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가와미 씨는 "거리에는 혐한(嫌韓)의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다고 하지만 2018년 11월 29일 한국 대법원 판결을 토대로 회사의 역사에 새겨진 강제노동의 책임에 응해 배상을 시도하는 것은 준법 경영의 실천 그 자체"라며 "경영자로서 손가락질받을 일이 아닐 것"이라고 썼다.

또 "조선의 소녀들에 대한 인권 유린의 책임은 75년간이나 방치됐고, 자사 내부의 역사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과 한국의 좋은 이웃 관계마저 크게 저해"되고 있다며 책임을 외면하는 것이 아시아 지역과의 역사를 배려하는 행동이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1944년 말 나고야 공습 속에 목숨을 걸고 일하던 선배 여성 사원으로부터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말을 듣는 최초의 사장이 될 수 있도록 이즈미사와 사장이 내리게 될 뛰어난 판단에 주목하고 있다"며 결단을 촉구했다.

금요행동에 참여해 온 일본 시민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거리 선전 활동을 원활하게 수행하기 어려워지자 매주 금요일 돌아가며 징용 판결 이행을 촉구하는 편지를 미쓰비시중공업에 보내고 있다.

가와미 씨는 2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반성할 것은 제대로 반성해야 하며 할머니(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잡아줄 책임이 있다"며 미쓰비시중공업의 태도 변화를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대법원은 고(故) 박창환 씨 등 강제 노역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이 피해자에게 1인당 8천만∼1억5천만원을 지급하라고 2018년 11월 29일 판결했다.

판결 확정 2년이 거의 다 됐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피해자에게 아직도 위자료를 지급하지 않았고 한국 내 자산 강제 매각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이다.

/최문섭 기자 chlanstjq9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