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마른 민어처럼…뼈대만 남은 망루

파시로 북적였던 덕적도 … 부의 상징 선주 이층집은 대표적 어업유산
당시 상황 유추할 수 있는 희귀공간임에도 지자체 관심 밖 역사속으로
▲ 왼쪽 사진은 수년 전까지 덕적도 북리 선주 집에 남아 있던 망루. 오른쪽은 지난달 15일 이미 무너진 망루가 방치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섬연구소,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재작년 무렵이라고 했다. 인천 옹진군 덕적도 북리에 사는 박모(82·여)씨는 마당에서 일하다가 “별안간 벼락치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대문 밖으로 나가 보니 앞집 이층 망루는 주저앉았고, 먼지만 피어올랐다. 지난달 15일 덕적도에서 만난 박씨는 “배를 부리고 살던 주인이 나간 지 오래됐다. 누가 허물지도 않았는데 비어 있던 선주 집이 혼자 무너져내렸다”고 했다.

박씨는 6·25 때 피란을 내려와 열다섯 살 때부터 북리에서 살았다. 북리항이 어선으로 그득했던 시절 “민어가 여기저기서 난리 치던 울음소리”를 기억하는 그는 “그놈의 민어가 어디로 갔는지 싹 다 없어졌다”고 말했다. '작은 인천'으로 불릴 만큼, 없는 게 없었다던 북리도 한적한 마을이 됐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덕적도는 민어 파시로 북적였다. 물 위에 열리는 시장인 파시가 벌어졌던 북리항에는 배들이 몰려들었다. 북리항이 한눈에 보이는 선주 집들에는 바다를 더 멀리 보기 위한 망루가 놓였다. 선주 이층집은 부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날 찾은 북리 마을에선 쓸쓸하게 무너진 선주 집 앞으로 또 다른 망루가 뼈대만 간신히 지킬 뿐이었다.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은 “망루가 있는 이층집들은 파시가 번성했던 연평도·흑산도뿐 아니라 어느 섬에서도 볼 수 없는 건축물”이라며 “파시 문화를 보여주는 희귀한 공간이자 근대어업유산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컸던 건물들이 지자체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금어장'을 추억하는 건물은 선주 집만이 아니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우체국이 모여 있는 진리 언덕배기에는 일제강점기 때 건립된 어업조합 건물이 남아 있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단층 건물은 외장재로 덮인 상태였지만, 지붕 양쪽에 솟은 벽돌 굴뚝으로 과거 모습을 유추할 수 있었다.

덕적우체국 직원 차준선(56)씨는 이 건물이 농협으로 쓰였던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덕적농협에서 일했던 그는 “어업조합이었다가 1990년 무렵까지 농협 건물이었고, 그 이후 개인에게 넘어가면서 리모델링됐다”며 “건물이 튼튼했다. 지금도 벽체는 그대로 있고, 수리만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민어와 조기, 새우잡이 배들로 붐볐던 덕적도에서 뱃사람들의 터전은 기억 너머로 묻히고 있다. 선주 집 망루도, 어업조합 건물도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위태로운 근대건축물 중에서도 어업유산은 유독 서글픈 신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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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근대문화유산(2016)' 210개 목록에 오른 덕적도 건축물은 진리에 위치한 '최씨 주택' 하나뿐이다. “덕적도 갑부의 집으로 1940~1950년대 고위 관리들이 여관처럼 사용했던 곳”이라는 설명이 붙은 집이다. 이마저도 2010년 무렵부터 항공사진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날 주민 도움으로 겨우 찾은 현장에는 수풀이 우거져 있었다. 토박이인 김혜경(73)씨는 “안채, 바깥채가 큼직하게 지어진 기와집이었다. 그 가족이 배 사업도 하면서 워낙 잘살았다”며 “후손들이 뭍으로 이사 간 뒤로도 집은 그대로 있었는데, 10년쯤 전에 허물어졌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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