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경쟁 사이 낀 한국, 선택 기로
“한미 군사동맹의 종식 의미
주한미군 철수 안보 우려땐
미중 포함 동북아 공동체를”
▲ 이재봉 원광대 교수가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한반도의 미래’ 강연에서 ‘한반도 중립화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생명평화포럼(상임대표 정세일)은 지난 12일 오후 인천 미추홀구 구월로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꿈’에서 제6차 인천시민평화강좌를 개최했다. 168차 생명평화포럼을 겸한 이 날 강좌에서는 이재봉 원광대 교수가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한반도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이 교수는 먼저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에 대해 “미국은 자신들의 국가안보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한 세계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고립주의’와 국제적 역할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국제주의’ 정책을 번갈아 채택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2017년 집권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이익을 가장 앞세우는 ‘미국 우선주의’를 펼치면서 ‘신고립주의’를 유지한 반면, 새롭게 정권을 차지한 바이든 정부는 신국제주의를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미국은 인류 역사상 가장 호전적 국가

이 교수는 이어 미국의 전쟁 역사와 관련, “미국은 1776년 독립선언 이후 2020년 현재까지 244년 가운데 223년 동안 전쟁을 치렀다”면서 “전쟁이 없던 기간은 21년밖에 되지 않을 만큼 인류 역사상 가장 호전적인 나라”라고 주장했다.

2차대전 이후 전 세계 150개 이상 지역에서 발생한 250개 전쟁 중 200개 이상이 미국에 의해 일어났고, 세계 각지에 1천 곳의 군사 기지와 150개 이상 국가에 15만 명 이상의 병력을 전진 배치해 놓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처럼 호전적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국전쟁 때 단 한 차례 전쟁을 치른 북한을 오히려 ‘호전적인 나라’라고 비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미국, 대중국 견제 위해 한국과 일본 끌어 들여

이 교수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에 대해 “미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끝나자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보고, ‘중국견제론’을 앞세워 중국을 견제하는 새로운 냉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일본의 재무장을 막고 있는 평화헌법을 수정해 전쟁이 가능한 ‘보통 국가’가 되도록 촉구하는 한편 일본을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도록 지원해왔다.

2015년에는 북한 위협을 빌미로 남한을 끌어들여 이른바 한·미·일 삼각공조를 강화하고 2017년 남한에 고고도미사일방어망(싸드, THAAD)을 배치한 것도 중국견제용이었다.

특히 “미국이 60년이 넘도록 한국전쟁을 끝내지 않고 북한과의 평화협정을 거부하는 이유도,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을 맺으면 중국을 견제하는 주한미군의 유지 명분이 사라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데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미국은 한국의 정치 군사적 유일 동맹, 중국은 미국 교역량의 2배가 넘은 제1 무역 상대국

이 교수는 “미국의 중국을 압박하고 견제하는 이유는 경제적 배경이 크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국가 주도의 경제모델 확산시키고, 유럽에서는 전략적 발판을 마련하고 있고,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미국은 올해 G7 정상회의에 한국을 포함한 4~5개국을 추가 초청하겠다고 밝히는 등 중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는데, 남한을 이용하려고 하지만, 중국이 남한의 제1 무역 상대로 부상한 점을 고려한다면 ‘균형과 중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중국 무역량은 2004년부터 한국-미국 무역량보다 많아졌고, 2009년부터는 2배를 넘어섰다. 한국이 중국에서 얻은 무역흑자는 연평균 430억 달러인 데 비해 미국으로부터의 흑자는 144억 달러에 불과하다. 중국과의 무역 규모는 미국의 2배 이상이고 흑자 폭은 3배에 이른다.

이처럼 유일한 군사 동맹국인 미국과 제1 교역대상국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남한은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 평화와 통일을 위해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꿈’에서 개최된 제6차 ‘인천시민평화강좌’ 참가자들이 이재봉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꿈’에서 개최된 제6차 ‘인천시민평화강좌’ 참가자들이 이재봉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 ‘한반도 중립화’로 미중 갈등 상황 돌파해야

이 교수는 그 해답으로 ‘한반도 중립화’를 제시한다. 그는 “중립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상태”라면서 “이는 어느 특정 국가와 군사협력 관계나 군사동맹을 맺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 한미 군사동맹을 끝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서는 남한 단독이 아니라 북한과 더불어 중립을 추구해야 하며, 주변 강국들이 이에 동의하고 보장해야 실현될 수 있다”며 “북한은 ‘어느 대국에도 기울지 않는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중립국가로 돼야 한다’며 중립적 통일방안을 강조해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미국은 1953년과 1970년 두 차례 한반도 중립화를 검토했다”면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나 감축 또는 철수를 계획하면서도 한반도가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지 않도록 중립화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협정 조인을 앞두고 협정 서명 후 3개월 이내에 한반도 안에서 외국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내용의 초안에 대한 대비책으로 휴전 이후 한반도의 중립화 방안을 만들었다. 1970년대에는 주한미군을 철수할 경우 한반도의 중립화가 필요할지 모른다며 카터 대통령이 이에 관한 정책 검토를 지시했다.

중국도 북한 핵무기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폐기를 포함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반대할 이유가 없는 만큼, 남한은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균형 외교’ 또는 ‘등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북한과 더불어 중립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 남북 공동으로 ‘한반도 중립화’ 추진하고 주변 강대국이 보장하는 방안 바람직

이 교수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은 냉전 시대에 한반도 평화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탈 냉전 시대엔 중국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목표나 이익이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강화하면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큰 도움과 이익을 얻게 되지만, 한국의 중국 보복에 의한 막대한 경제손실을 입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중국과 미국이 군사적으로 맞서며 무력 출동을 벌이게 될 경우, 중국의 제1 폭격 대상은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군기지가 있는 평택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럴 경우 한국이 전쟁터로 변할 위험성이 있다.

이 교수는 ‘한미동맹 약화나 해체 또는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로 한국의 안보가 불안해질 것을 우려한다면,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나 동아시아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도 바람직하고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하는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정찬흥 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report61@incheonilbo.com

정세일 생평평화포럼 상임대표가 ‘인천시민평화강좌’와 ‘평화순례’를 기획한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세일 생평평화포럼 상임대표가 ‘인천시민평화강좌’와 ‘평화순례’를 기획한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세일 생평평화포럼 상임대표가 ‘인천시민평화강좌’와 ‘평화순례’를 기획한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제6차 인천시민평화강좌 참석자들이 이재봉 교수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