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2011년 6월22일. 계양산을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날이다. 이날 드디어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계양산 골프장 건설을 백지화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시민들은 "인천을 지켰다"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했다. 굴업도 핵폐기장 반대와 인천대교 주경간 폭 확대 등 몇 안되는 시민운동의 성과이기도 했다.

높이 395m로 높지는 않지만, <동국여지승람>엔 인천의 진산으로 기록돼 있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서북쪽으론 영종도와 강화도 등 인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1168~1241)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통해 계양산을 언급한다. “인근 지역이 조망되는 지리적 조건으로 계양산에서 인천 북부와 한강 하류 지역을 통제할 수 있다.” 작아도 인천시민들이 계양산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계양산을 지키자'며 저항 운동을 벌인 때는 2006년. 롯데그룹에서 계양산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시민들은 '대기업 횡포'에 맞서 가열차게 싸워 나갔다. 300여일을 나무 위에서 시위를 하고, 서명운동을 펼쳤다. 촛불집회와 캠페인도 계속됐다. 시민들이 아끼고 가꾸던 산이었고, 삭막한 인천에서 매우 중요한 녹지이기 때문이었다. 누가 숲의 생명을 소유하고, 그 땅의 생명체 삶을 결정할 수 있는가.

시민들은 그렇게 5년 넘게 '롯데'를 상대로 긴 싸움을 펼쳐왔다. 계양산 지키기 운동은 '내셔널트러스트 상', '강의 날 대회 대상', '15회 풀꽃상' 등을 거머쥐기도 했다. 운동의 결실을 거둔 일은 비단 골프장 백지화뿐만 아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반딧불이와 도롱뇽, 마르지 않는 샘 등 계양산의 '보물'을 찾아냈다. 그러면서 계양산을 어떻게 가꿔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했다.

골프장 건설 백지화 결정이 나자, 인천시는 그해 '계양산 보호 조례'를 제정했다. 조례엔 시가 계양산 보호 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하고, 5년마다 재검토하도록 규정했다. 이 계획은 계양산의 자연과 생물 다양성 현황 분석에 더해 자원의 활용 방안, 중장기적 보호 방향 등을 담았다. 하지만 그 계획 수립은 또 연기됐다. 계양산과 관련된 다른 사업을 계양산 보호 종합계획에 반영해야 한다는 까닭으로, 용역을 예산에 반영하지 못해서다. 시는 그동안 계양산 북측 257만㎡ 부지에 골프장을 조성하려던 롯데그룹과의 '도시관리계획 폐지 처분 취소' 소송을 진행하며 종합계획 수립을 미뤄왔다. 그러다가 지난 2018년 10월 대법원이 롯데 측 항고를 기각하면서야 종합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시민 운동으로 계양산을 지켜낸 만큼, 계양산 보호 종합계획을 수립하는 용역 과정에도 시민 참여로 실행력을 높였으면 한다. 지역사회 공론화를 통해 당위성을 확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계양산을 보호하는 '정책'으로 이어지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에 만연된 '비상식적 개발'이 하루빨리 종지부를 찍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