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 빵공장이 운영되고 있는 ’캠프 마켓‘ 한 쪽은 지금도 여전히 시민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장벽으로 가로 막혀 있다.

한국전쟁 70주년을 성찰하고 평화도시 인천을 모색하는 생명평화포럼(상임대표 정세일)의 ‘평화 순례’ 세 번째 행사가 7일 오전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일대에서 개최됐다. 이날 행사는 일제의 전쟁 동원과 미군 주둔의 역사가 깊게 패인 캠프 마켓 주변에서 진행됐다.

순례단은 산곡동 현대아파트 앞 2001 아울렛 부평점에서 출발해 신촌, 미쓰비시 공장터, 미쓰비시 사택, 부평 철도지선에 이어 부평 미군기지를 3시간여에 걸쳐 차례로 둘러봤다. 해설을 맡은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는 2001 아울렛 건너편 신촌에서 부평지역의 미군 기지촌에 대해 설명했다.

- 일제 때 조성된 신촌, 미군 주둔 후엔 기지촌으로 변모

행정구역상 부평3동에 속한 신촌은 1930년을 전후해 부평에 공장이 건설되면서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아 부평에 들어오면서 건설됐다. 이들은 미쓰비시 공장 근처인 신촌에 집을 짓고 살면서 마을 이름을 신촌(新村)의 우리말인 ‘새마을’이라고 불렀다. 광복 후 이곳에 미군 부대가 들어서자 미군을 대상으로 한 클럽들이 줄지어 들어섰다.

▲ 신촌이 미군으로 북적일 당시 클럽으로 사용되던 건물. 정면 위쪽 요철 부분에 클럽 간판이 붙어있었다.

-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의 이름 ‘삼릉’에 줄사택 건립

순례단은 미쓰비스 공장터인 부평공원과 부평2동 ‘삼릉’의 미쓰비스 줄사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삼릉(三菱)은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의 한자 이름이다. 1930대 말 부평공원 자리의 공장을 인수한 미쓰비시는 삼릉에 공장 종업원들의 거주지인 줄사택을 지었다. 지금은 줄사택 일부를 허물어 도서관과 경로당 건물을 짓고 있다.

부평역은 1899년에 영업을 시작했다. 그 주변은 조선병참기지화 정책과 맞물려 1930년 중반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이 지역에는 히로나카 상공, 디젤자동차 조선제조소, 동경자동차 부평공장, 오사카 철사공장, 고주파 부평공장, 경전 와사제조장 등이 건립됐다. 주변의 철도도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공장과 연결시키기 위해 부평역에서 갈라져온 지선이 인천육군조병창과 히로나카 상공 부평공장 등으로 연결됐다.

- 81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부평 미군기지

순례단은 이어 81년 만에 인천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에 도착했다. 1939년 일제가 이 자리에 무기 제조공장인 육군조병창을 세우면서 우리 민족의 품에서 멀어진 이곳은 일제 패망 이후에는 미군이 주둔해 긴긴 시간 금단의 땅이 되고 말았다.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 잃은 조선의 노동자들이 만주 침략의 무기 생산에 동원돼 강제 노역에 시달렸고, 미군이 주둔한 뒤로는 기지촌 주변의 암울한 역사에 짓눌려야 했다. 기지 내부에는 일제가 조병창 시기 병원으로 사용하던 곳을 미군이 식당과 클럽으로 개조해 이용한 건물이 ‘두 시기를 거쳐 온 과거의 흔적’을 간직한 채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 부평 미군기지 캠프마켓 내부에는 미군이 식당과 클럽으로 사용하던 건물이 남아 있다.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병원으로 사용하던 것을 미군이 개조해 재사용했다.

- 일제 강점기 때는 육군조병창으로, 광복 이후엔 미군이 군수기지로 사용

일제의 침략전쟁 무기인 소총과 총검이 만들어진 인천육군조병창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조성계획이 시작돼 1941년 문을 열었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노동자들 이외에도 인천공립공업, 인천공립중학, 인천공립상업, 인천공립고등여학교, 인천소화고등학교 학생들이 동원됐다.

광복 이후에는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미군이 일제의 육군조병창 자리를 점령해 군수기지로 계속 사용했다. 1945년 9월 16일, 이곳을 애스컴 시티라고 이름 붙인 뒤, 1973년 해산될 때까지 주한미군의 대표적 군수기지로 운용됐다.

- 미군기지 내 반공포로수용소에서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부평 미군기지는 여러 개의 캠프로 구분되어 있는데, 그 중 지금의 부영공원 자리에 있던 캠프 하이예스에는 한국전쟁 중 반공포로수용소(부평 제10수용소)가 설치됐다. 1953년 6월 18일 이승만 대통령이 자정을 기해 전국의 반공포로를 기습적으로 석방할 때, 이곳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포로들이 집단적으로 수용소를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는 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

- 기지 개방 이후에도 일부지역은 여전히 철책으로 가로 막혀

기지 내 부대들이 타 지역으로 이전한 후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제빵공장을 운영하는 ‘캠프마켓’이다. 오랜 기간 우여곡절을 겪은 뒤 지난달 14일 가까스로 인천시민들에게 반환된 캠프마켓은 지금도 여전히 평택 공장이 완공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부 지역을 철제 담벼락으로 가로막은 채 빵공장을 계속 가동하고 있다. 부평 미군기지가 과거의 아픔을 씻고 인천시민들에게 온전히 돌아오기 위해서는 더 많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김현석 이사는 순례 말미에 “아직 개방되지 않은 지역에 일제 강점기 때 무기를 생산하던 조병창 자리가 있다”면서 “기지가 완전히 개방된 이후 이에 대한 좀 더 많은 연구가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생명평화포럼 제3차 평화순례 해설을 맡은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가 부평 미군기지 주변의 변천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부평 미군기지 평화순례단이 캠프마켓 안내소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한국전쟁 70주년 성찰과 평화도시 인천의 모색’, 마지막 행사 오는 12일과 21일 개최

‘2020 인천시 평화도시 공모사업으로 네 차례 진행하는 ’평화 순례‘는 생명평화포럼이 주관하고 인천광역시가 후원하고 있다. 마지막 행사는 오는 21일 6.25 한국전쟁의 기념물이 남아있는 수봉공원과 인천상륙작전기념관 등지에서 개최된다.

생명평화포럼은 이와 함께 ‘인천시 평화도시 공모사업’의 또 다른 행사인 ‘시민평화강좌’ 6번째 강연을 오는 12일 오후 7시 미추홀구 구월로 여행인문학도서관 ‘길위의 꿈’에서 가질 예정이다. 이재봉 원광대 교수가 ’미국의 세계 패권 전략과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강연한다.

/정찬흥 논설위원·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