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도로명주소와 관련돼 잘 믿기지 않는 얘기가 있다. “도로명주소 체계가 완전히 자리잡으려면 30년 정도 걸린다”, “원래 사용하던 주소를 모두 잊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도로명주소가 시범기간 3년을 거쳐 전면시행(2014년)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실생활에서 사용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뜬금없는 풍자는 아닌 것 같다.

지난날 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을 때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도로명주소가 크게 고전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조차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하지만, 인천의 경우 외국어로 된 도로명과 옛 지명을 사용한 도로명이 한몫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연수구의 함박뫼로, 먼우금로, 미추홀대로와 남동구의 매소홀로, 논고개로 등은 예전 고을 이름을 끌어들인 도로명이지만 발음이 어렵고 생소해 주민들에게 선뜻 와닿지 않는다. 지역 역사성을 살린다는 취지는 좋지만, 도로명주소에 대한 인지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도는 센트럴로, 아카데미로, 컨벤시아대로, 아트센터대로 등 외국어로 된 도로명이 주를 이뤄 '쉽고 간편하게'라는 도로명주소 취지를 흐리게 한다. 국제도시이기 때문에 외국인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송도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주민의 2.2%에 불과하다. 송도에 사는 황모씨는 “아직도 도로명주소에 익숙하지 않아 아파트명 주소를 사용하는데 택배 등이 제대로 들어온다"고 말했다. 택배기사 정모씨는 “외국어로 된 도로명주소는 분별력이 떨어지고 외우기도 쉽지 않아 예전 방식대로 집을 찾는다”고 밝혔다.

도로명주소 사용이 저조하자 이벤트를 진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다. 경북 예천군은 군청을 방문하는 주민들에게 예천에서 생산된 꿀을 나눠주며 도로명주소를 홍보하고 있으며, 경기 안성시는 도로명주소 홍보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하고 인증하면 상품을 제공한다. 제주시는 '도로명주소 퀴즈 이벤트'를 실시해 정답을 맞히면 마스크 10개를 준다.

사족이지만, 역사 인식에 문제가 있는 도로명도 있다. 연수구 '원인재로'에 등장하는 원인재는 이허겸의 사당이다. 이허겸은 고려시대 문종~인종 7대에 걸쳐 왕실의 외척으로 권세를 누리며 나라를 어지럽힌 인주이씨 중시조다. 관광해설사들은 원인재를 인천의 자랑거리처럼 소개하지만, 역사를 제법 아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여하튼 이치를 알면 쉽고 편리한 도로명주소가 하루빨리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고유지명•외국어로 된 도로명이 이같은 당위를 저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