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 잇따라 숨졌다. 뒤늦게 택배회사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미온적 대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21일 올해 들어 13번째 택배기사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파주시와 광주시에 위치한 CJ대한통운 물류터미널 두 곳을 오가며 트럭으로 택배 물품을 운송하던 30대 가장 A씨가 숨을 거뒀다. 제대로 휴식하지 못한 채 30시간 넘게 일하던 A씨는 CJ대한통운 곤지암허브터미널 간이휴게실에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유족들은 코로나19와 추석이 겹치면서 택배 물량이 크게 늘어났지만 같은 인력과 시스템을 적용한 데다 신속 배송 경쟁까지 더해져 고인이 과로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목숨을 잃은 13명의 택배기사 중 6명의 사망자를 낸 CJ대한통운 측은 22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택배 기사 및 택배 종사자 보호 종합대책'을 내놨다. 분류작업 지원인력 3000명을 다음달부터 단계적으로 투입하고, 내년 상반기 안에 모든 택배 기사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권고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추가로 투입되는 택배 분류 인력 3000명도 직접고용이 아닌 간접고용으로 채용된다. 산재보험 가입도 강제력 없는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CJ대한통운 측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한 당일 A씨의 빈소를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지만 간접고용 형태로 채용된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에는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A씨의 유족들은 택배업계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과 보상을 요구하며 23일 예정됐던 발인을 연기한 상태다.

살인적인 노동을 감당해야 하는 택배 기사들의 장시간 노동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실태조사와 함께 사각지대에 놓인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한 법의 제·개정이 필요하다.

CJ대한통운이 내놓은 뒷북 대책이 일회용 면피성 대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내놓은 대책이 아니라 CJ대한통운이 내놓은 대책이 택배업계 전체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