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Dynnnnnanana, life is dynamite(인생은 다이너마이트.)”

며칠 전까지 귓가에 맴돌던 가사를 어느새 흥얼거리고 있다.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긍정적 메시지의 가사, 멤버들의 우월한 비주얼과 현란한 댄스, 감각적인 뮤직비디오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방탄소년단(BTS)이 8월 발매한 디지털 싱글 '다이너마이트' 얘기다. 한국가수 최초로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핫100'의 1위를 차지하여 한국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를 쓴.

다이너마이트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노벨이 발명한 폭약'이라고 정의한다.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1866년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흡수시켜 막대기 형태의 폭약을 만들어 특허를 내면서, '힘'을 뜻하는 그리스어 dynamis에 접미어 –ite를 붙여 다이너마이트라는 조어(造語)를 만들었다.

해마다 10월이면 노벨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수상식이 거행되면 세상은 들썩인다. 상금도 어마어마한, 최고의 영예인 노벨상 수여가 무려 120년간 지속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첫째 노벨에게 어마어마한 부를 가져오게 한 특허 제도이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은 1867년 영국과 미국에 특허를 출원하였고, 다이너마이트가 채광, 다리 건설 등에 널리 활용되면서, 유럽 전역에 90개의 공장을 건설, 생산•판매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었다. 노벨은 이후에도 발명을 계속하여 무려 355개의 특허를 출원하였다.

둘째 노벨로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한 언론사의 오보이다. 1888년 4월12일 형 루드비히가 칸느에서 사망하자, 한 프랑스 신문은 다음과 같은 부고를 내었다. “Le marchand de la mort est mort! 죽음의 상인이 죽다. 사람을 더 많이, 더 빨리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했다.” 노벨은 자신의 왜곡된 공적 이미지에 충격을 받았고,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벨상을 구상했다고 전해진다.

셋째 노벨의 유언장이다. 1896년 12월10일 노벨이 사망하고 3주 뒤 그의 유언장이 공개되었다. 1895년 11월27일 파리에서 작성된 유언장에는 일부 재산을 형제•조카•지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유산의 94%를 기금으로 재단을 만들어 매년 나오는 이자로 다섯 분야에 걸쳐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라고 적혀 있었다.

평생 독신이었던 노벨이 배우자도 없고 사생아도 없었음은 천만다행이다. 문제는 유럽 전역에 걸친 노벨의 재산을 정리하여 수상기관도 적시되어 있지 않은 모호한 유언을 집행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조수였던 랑나르 솔만은 변호사 칼 린드하겐의 도움을 받아 유언을 완벽하게 집행하였다.

넷째 노벨재단의 성공적인 기금 운용력이다. 1900년 설립된 노벨재단은 1901년부터 시상을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안전한 채권에만 투자하였으나 1•2차 세계대전으로 자금운용이 어렵게 되자 스웨덴 정부는 과감하게 면세혜택을 주고 주식투자를 승인하였다. 이에 투자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지속가능한 시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노벨이 진정한 세계시민이자 과학자, 문학도, 평화주의자였다는 점이다. 노벨은 스웨덴에서 태어났으나 러시아에서 성장하였고 프랑스, 미국, 독일 등에서 살다가 이태리 산레모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물리, 화학에 관심이 많은 발명가였고, 문학도로서 시와 소설을 습작하였으며, 현재의 핵억지력에 상응하는 '전쟁을 완전히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무시무시하고 대규모의 파괴력을 가진 폭발물을 개발하겠다'고 생각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러한 이유로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서 “국적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인류에게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수여한다는 그의 뜻이 나온 것이다.

만약 노벨이 하늘에서 다이너마이트 노래를 듣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So I'mma light it up like dynamite, woah!(빛으로 물들일거야, 다이너마이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