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올해는 전태일 50주기이다. 전태일의 의미를 기리는 각종 행사가 코로나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양하게 열리고 있다. 서울에는 전태일 거리가 있다. 옛 평화시장 거리에 있는 전태일 다리에는 많은 동판이 있어 그를 기리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전한다. 또 작년에 개관한 전태일 기념관도 있다. 서울의 중심 을지로 한복판에 있다.

서울에 전태일이 있다면 인천에는 여성노동자들의 찬란한 투쟁의 역사가 있다. 동일방직 노동조합이 그것이다. 동일방직 노동조합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가 버리고 간 공장을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 관리하며 독립한 나라의 자립을 위해 애쓰던 동양방직 노동자 자주관리의 역사가 있다.

1976년 알몸시위와 맨발행진으로 구속된 집행부를 석방시킨 단결과 의리의 역사가 있다. 대의원대회 자리에 똥물을 퍼붓는 어용노총과 사측에 맞서 싸우고 124명의 해고 참사에도 투쟁을 놓지 않았던 열정과 끈질김의 역사가 있다. 동일방직 노동조합을 기억할 사람들이 많다.

또 최초의 위장취업자라 불리는 조화순이 있고 1970년대 최초의 민주노조 여성지부장이었던 주길자가 있다.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총각이 있고 최연봉이 있고 정명자가 김용자가 있다. 아, 이분은 왜 빼 놓느냐고 항의가 들어올 만한 수많은 동일방직 출신의 선배들이 있다. 또 동일방직 출신이 아니지만 1978년 여의도 부활절 예배에 50만명이 모인 가운데 단상에 올라 외면하고 있는 언론을 질타하다 구속된 인천이 낳은 여성노동운동가 김지선이 있다.

10월24일 갑자기 추워진 토요일에 아침부터 동일방직을 돌아보고 문화공연과 함께 토크콘서트가 있었다. 정명자 선배의 자기소개는 '동일방직 원직복직추진위원회 위원'이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다. 안타까운 소개이지만 든든한 소개다. 지금이라도 복직되면 일하고 싶다고 말씀할 때 함께 모인 청중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어진 공연에서 어머니가 동일방직에 다녔다고 소개하는 가수의 노래는 세대를 이어주는 잔잔한 울림이었다. 또 동일방직에 다녔던 분들이 아직도 여러 곳에서 일하고 있고 일터에서 자기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분들의 역사가 바로 인천의 역사이다. 과거가 없는 현재는 없고 미래도 없다. 레트로 인천이 일제의 유산만이 아니라 자립과 민주를 현장에서 외쳤던 여성노동자 기념관과 거리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