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물량 폭증
살인적 업무 시달려 사망

대한통운 하청에 보상 미뤄
협상때까지 발인 무기한 연기

7살 아들·4살 딸 둔 가장
장례식장 가족만 자리지켜
▲ /연합뉴스

“내가 먼저 죽었어야 했는데...아들이 세상 반도 못살고 갔다.”

가을바람이 차갑던 지난 21일 새벽 7살 아들과 4살 딸을 둔 30대 가장이 세상을 떠났다.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 강모(39)씨는 20일 밤 경기도 광주 CJ 대한통운 곤지암허브터미널에서 배차를 마치고 간이휴게실에서 쉬던 중 갑자기 쓰러졌다.

강씨가 택배 노동자로 일을 시작한 건 2년 전이었다. 그는 25t 대형차량을 운전하며 허브터미널에서 다른 지역의 허브터미널로 택배 물품을 운반하는 간선 차량 노동자였다.

올해는 코로나19로 택배 물량이 폭증하면서 과로에 시달리는 일이 잦았다. 2~3개월 전부터는 추석 물량까지 겹치면서 3일씩이나 집에 들어오지 못하기도 했고, 그런 날이면 강씨는 트럭 운전대 뒤쪽의 작은 공간에서 홀로 외로운 잠을 청했다.

평소 운행하던 CJ파주 허브터미널~광주 CJ곤지암 허브터미널에 더해 최근에는 대전, 충북 진천 허브터미널까지 차량을 운행하며 피로는 쌓여만 갔다. 오후 5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후 2~3시까지 20시간 넘도록 일하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터로 향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사망 전인 18일에도 오후 2시부터 19일 정오까지 일했고, 퇴근하고 5시간 만에 다시 출근하는 살인적인 업무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강씨의 빈소가 차려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지하 2층엔 6~7명의 유족만 자리를 지켰다. 장례식장은 조문객 없이 적막이 흘렀다. 강씨에겐 아내와 7살 아들, 4살 딸이 있다. 빈소는 홀로 된 부인과 강씨 부모만 지켰다. 아무도 찾지 않아서인지, 방명록에는 누구의 이름도 적혀 있지 않았다. 초라한 빈소 입구에는 가족의 신발 대여섯 켤레만 나뒹굴었다.

유가족은 이날 발인을 할 예정이었으나 CJ대한통운과 보상에 대한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발인을 무기한으로 미뤘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서 지금 국회라도 가야겠어요.” 강씨 어머니가 손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들어 국회로 향했다.

강씨 아버지는 “CJ대한통운 물량이 코로나19와 추석이 겹치면서 크게 늘었다. 물량은 늘어났는데 같은 인력과 시스템을 적용하니 노동자는 과로할 수밖에 없는 구조 아니겠냐. 여기에다가 택배회사들은 신속 배송을 홍보하면서 3일 치 물량을 하루 안에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런 욕심이 노동자를 죽게 하였다”며 가슴을 쳤다.

박근희 CJ대한통운 대표가 대국민 사과를 한 22일 강씨 빈소에 CJ대한통운 관계자들이 찾아왔으나, 유족의 거센 항의를 받고 돌아갔다.

강씨 아버지는 “CJ대한통운에서 일하다 CJ대한통운 작업장에서 사망했는데도 책임이 없다며 일절 보상을 안 해주겠다고 한다”며 “말이 안 된다. 진심 어린 사과와 보상이 있을 때까지 발인을 미루겠다”고 말했다.

/고양=김재영·김도희·최인규 기자 kdh@incheonilbo.com



관련기사
늘린다는 택배 인력도 간접고용…책임 회피하나 CJ대한통운이 잇따른 택배 노동자들의 사망사고에 재발방지대책을 내놨지만, 노동자들은 간접고용 등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개선이 없다며 평가절하했다.25일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등에 따르면 CJ대한통운은 지난 22일 '택배 기사 및 택배 종사자 보호 종합대책'을 내놨다.대책은 내달부터 택배 분류를 지원하는 인력 3000명을 투입해 총 4000명까지 늘리겠다는 것이 골자다. 그간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와 택배업계 안팎에서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이기도 하다.그러나 추가로 투입되는 택배 분류 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