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일 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

인천만큼 평화에 대한 열망이 큰 도시도 없다. 전쟁을 겪고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 모두가 평화를 바라고 있겠지만 인천시민의 평화바라기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인천시민이 끼고 사는 서해는 휴전 이후 늘 긴장 상태에 있었고 크고 작은 분쟁으로 실질적 피해와 고통을 온전히 떠안고 살아온 접경지다.

물론 안보를 앞세우며 평화를 미루는 시민들도 있고, 좋은 안보는 평화를 유지하는 안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으며 안보의 목적은 평화라고 설명하는 긴 안목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인천이지만 평화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에 대한 시민의식은 어느 도시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역대 시장 선거에서 진보진영 후보는 물론이고 보수진영 후보도 서해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정책이든 하다못해 구호에 그치는 슬로건이라도 내놓지 않은 적이 없는 걸 보면 인천시민의 관심사에 '서해 평화'가 자리잡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2017년 북한의 제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호 발사 등으로 고조된 긴장 상태에서 2018년 판문점에서의 4•27남북정상회담으로 대화와 화해 국면으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출범한 민선7기는 시류를 타고 '동북아 평화번영의 중심도시 인천'을 5대 시정목표에 넣어 인천을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확고하게 표방하였다.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평화도시조성위원회'를 조직하여 시 집행부의 평화관련 정책과 예산에 대한 심의•자문뿐만 아니라 민관협치 방식으로 시민이 참여하는 평화 관련 사업들을 촉진하고 주관하도록 하였다.

지난 20일에는 인천시가 인천연구원과 공동으로 '평화도시 인천과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2020 황해평화포럼 국제학술회의'를 주최했다. 이번 국제학술회의가 민선6기에 중단됐던 '서해평화정책포럼'을 민선7기에 들어 '서해평화포럼'으로 부활시키고 '황해평화포럼'으로 다시 창립하는 곡절을 겪고 마련한 행사라는 점에서 민선7기의 평화도시 정책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평화도시 조성을 위한 인천시와 시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있다. 올해는 한국전쟁과 인천상륙작전 70주년이다. 코로나19로 올해는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행사가 조용했지만 매년 9월 인천에서는 인천상륙작전 기념식이 성대하게 치러졌다. 인천 곳곳에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하는 조형물과 6•25참전용사를 기리는 현충탑 등이 산재해 있다.

반면에 인천상륙작전으로 희생을 당한 인천시민들을 위로하는 조형물은 찾아보기 어렵고 희생자와 유족을 위로하는 행사라고는 월미도 원주민들이 스스로 마련한 '인천상륙작전 월미도 원주민 희생자 위령제'가 고작이다.

지난 17일 평화도시조성 공모사업으로 필자가 대표로 있는 단체가 주관한 평화순례에서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으로 활동한 바 있는 최태육 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장은 “6•25한국전쟁을 전후해 인천지역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민간인 피해자가 1만명에 이르는데 정확한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화해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인천시가 추진 중인 '평화도시조성사업'의 '평화'에 대한 개념이나 정의가 다양한 가운데 현대 평화학에서는 '분쟁과 다툼이 없이 서로 이해하고 우호적이며 조화를 이루는 상태'로 이해한다. 즉 평화는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는데, 여기서 조화란 같은 편 사람들이 뭉치고 단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 서있는 이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말한다. 인천•강화지역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은 한국전쟁 시기에 자신들의 가족이 당한 무고한 희생을 증언하며 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증언과 요구에 귀를 막고 이들을 배제한 채 부르는 평화의 합창은 조화가 없는 떼창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시민이 함께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평화의 합창을 듣고자 한다면, 이제 진정한 평화도시 인천을 만들고 싶다면 한국전쟁 시기에 인천에서 일어난 민간인 무고한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에 인천시민이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인천시도 적극 나서야 한다. 그것은 단순한 민원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향해 나가는 길에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관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