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대한민국이 유례없는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절, 해외에서는 한국인들을 일벌레쯤으로 쳐다봤다. 사회 전체가 퇴근 시간도, 주말도 모르던 때다. 일 외의 것이라고는 온통 술과 고스톱 뿐이었다. 그러고는 시도 때도 없이 사우나로 몰려가 피로를 풀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가장 최근의 핫 트렌드는 낚시다. 남녀노소 할 것없이 뛰어들어 낚시 인구가 500만을 헤아리게 됐단다. '낚시 인구가 등산을 추월했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등산쪽에서도 가만 있지 않았다. 등산 인구에 트레킹족까지 포함하니 2600만명에 이른다고 했다. 1970년대 대학가의 잡기로 알았던 당구도 되살아나 인구 500만을 헤아린다. 골프 인구도 오히려 코로나19 덕을 봐 500만을 넘어섰다는 최근 뉴스다. 여기에 골수 마니아들의 극기 운동인 마라톤 인구도 5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오래 전, 난생 처음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했을 때다. 20㎞ 구간쯤에 이르자 온 몸에서 고통이 몰려왔다. 숨은 가빠오고 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런데 그 날 코스는 하필 자전거 전용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루트였다. 남은 힘들어 죽겠는데 옆에서는 자전거족들이 휘파람을 불면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저런 스마트한 운동을 두고서 왜 이 고생인가'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 역시 러닝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달리기가 30분 이상을 넘어서면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라토너들에게 도취감이나 쾌감과 같은 최상의 행복감을 선사하는 마약같은 것이다. 뇌 분비 신경물질 베타 엔돌핀과 관련되는 것으로 중독성도 있다. 이 덕분에 마라톤 매니아들은 한 때의 고통은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대회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그 어느 스포츠 활동보다 마라톤에 타격을 안겼다. 1600여 개에 이른다는 마라톤 동호회도, 연간 250여 차례의 마라톤대회도 올스톱됐다. 그렇다고 마냥 체념만 하고 있을 달림이들이 아니다. 추석을 맞아서도 랜선 차례, 온라인 성묘를 하는 시절이다. '버추얼 레이스'는 코로나19의 훼방을 피하고자 나온 새로운 달리기다. 스마트폰에 관련 앱을 설치하고 스스로 코스를 찾아 뛰면 오프라인 대회에 참가한 이상의 달리기 맛을 느낄 수가 있다. 여럿이 함께 속도를 조절하면서 완주의 꿈을 이루던 것에서 이제는 거리두기를 지키며 혼자 뛰는 마라톤이다.

▶'인천국제하프마라톤'은 20년째 '인천의 전설'을 써왔던 메이저대회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극복 버추얼 레이스'로 맥을 잇게 됐다. 10월12일부터 11월7일까지 풀코스, 하프코스, 10㎞, 5㎞ 종목으로 개최되며 접수 마감은 10월30일이다. 행사비의 일부는 코로나19 방역 전사들에게 쓰이는 기부 캐치프레이즈도 겸한다.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을 '코로나19 극복 버추얼 레이스'로 훌훌 털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