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4월 48명의 사상자를 낸 이천 물류창고 참사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의 시급성이 다시금 조명됐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미적거림이 경기지역 시민단체의 반발을 불렀다.

시민단체는 산업 재해가 난 현장의 기업을 처벌하는 법안, 즉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마련하지 않은 한 끊이지 않는 산재 사고를 막을 길이 없다면서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24일 민주노총 경기도본부에 따르면 경기도시민사회단체연대 등 시민단체 40여곳은 이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경기운동본부'를 발족했다.

지난해 수원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고 김태규씨 사고에 이어 올해 이천물류창고 참사 등으로 법 제정의 목소리가 커졌으나 정부가 관망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사고 직후 산재가 발생한 기업을 엄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속속 등장했으나 6월 발의만 됐지 본회의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이처럼 대형 재해에도 정부나 정치권이 꿈쩍하지 않자 법 제정 운동에 나선 것이다.

전국에서 매년 2400건에 달하는 산재 사고가 나는데, 경기지역은 무려 30% 이상인 800여건이 발생하는 것으로 민주노총 경기본부는 분석하고 있다. 이 중 발주처, 즉 원청 대표가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법을 제정한 영국을 보면 필요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영국은 2007년 '기업 과실치사 및 살인법'을 제정했다. '법인'을 범죄 주체로 보고 과실치사, 과실치상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골자다. 벌금도 최대 300억원에 달한다.

노동자 10만 명당 산업 재해 현황(2015년 통계청)을 보면 한국은 5.3명으로 영국 0.8명보다 7배 가까이 높다.

경기운동본부는 올해 안에 법 제정을 목표로 10월부터 소규모 집단행동 나서기로 했다. 10월 말부터는 경기지역 국회의원 59명 사무실에서 1인 시위 벌이면서 압박할 계획이다.

경기운동본부 등 30여명은 이날 더불어민주당 경기도당 앞에서 이런 내용의 기자회견 열고 법의 필요성 등의 내용이 담긴 의견서 제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 김태규씨의 어머니도 함께해 “인간의 생명이 기업의 이윤보다 우선시 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운동본부 관계자는 “경영책임자와 원청회사는 전혀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았다. 올해 발생한 이천물류창고 참사도 마찬가지여서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 기업의 책임의식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일터에서 죽지 않을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법 제정 운동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