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태 해양경찰청 청렴시민감사관

 

우리 조상들은 바다에서의 한해 안녕과 풍어를 용왕제라는 행사를 통해 기원해왔다. 현대의 슈퍼 컴퓨터로도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든 바다의 상황을 출항에 앞선 자들의 정결한 마음과 철저한 준비를 통해 이겨 보고자 다짐하는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원의 내용인 용왕제 소리는 배를 타는 사람들과 지역주민들이 '부정 탈 일'들을 조심하자는 당부의 말들이다. 미신 같고 성차별적인 부분들이 없지 않지만 거친 바다를 대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조상들의 마음 조심과 그것을 지켜보는 지역민들의 간절함이 용왕제의 핵심이랄 수 있겠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민 행사나 활동을 줄이고 있는 시기이지만 지난 7월 관가에서는 의미있는 의기투합이 조용히 이뤄졌다. 바다를 터전으로 활동하는 해양수산단체들과 해양경찰청이 청렴문화로 해양의 안전과 질서를 지켜보자는 새로운 용왕제에 한목소리를 낸 것이다.

해양 종사자를 대표하는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과 고용인 측인 한국선주협회, 한국해운조합, 한국수산경영인중앙연합회가 모두 모였으니 역사상 처음으로 해양의 노사가 함께한 것이다.

간혹 발생하는 바다 위의 안전사고나 불법적인 행위의 뒤편에는 반칙과 특권, 부정거래가 꼭 하나씩은 숨어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이 청렴하면 바다가 안전해지고 불법행위가 없어질 수 있다며 청렴한 해양문화 만들기 출항식을 열어 '청렴海야∼ 안전海요!'라는 공동의 슬로건을 내걸고 자정 노력은 물론 20만 공동회원들을 통해서 자신들을 감시해 달라고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용왕제의 현대식 해석인 셈이다.

서로의 사정을 합리화의 잣대로 보아 넘기던 관행을 더 이상은 계속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일단 환영한다. 회원들의 감시와 제보를 구하는 공격적인 마케팅 역시 박수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군걱정이 생기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다. 이런 다짐들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관심과 응원, 지켜보는 눈들이 필요하다. 대도시나 관가의 일이라면 미주알 고주알 몰라도 될 뒷이야기들까지 실시간으로 퍼나르다가도, 태풍으로 엉망이 된 울릉도의 모습이나 피해 상황은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알려지지 않는 우리의 편협한 시선을 넓힐 필요가 있다.

청렴은 부패행위를 하지 않는 소극적 의미를 넘어서, 정의감을 근간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공정성•투명성•책임성 등 바람직한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는 적극적 의미의 행동기준으로 공직자에게는 법적 강제성과 의무(이른바 김영란법)도 있다. 청렴은 우리의 생활양식으로 자리잡고 사회와 기관 문화로서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청렴문화는 공직자나 관련 단체 또는 시민의 어느 한쪽만이 하는 일방적 작용이 아니라 상호작용의 산물이며 서로의 약속이다. 정부기관은 법령에 근거하지 않는 권리 제한이나 의무 부과 같은 규제나 모호하고 비현실적인 절차, 과잉 중복 제한은 없는지 다시 살펴보고, 시민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책임과 바람직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용왕제는 한 마을의 행사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참석해 소리를 나누고 마음을 살피고 안녕을 다지던 자리였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카메라가 켜져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웃는다. 청렴을 위해 감시와 제보를 자청한 이들을 지켜봐 주어야 한다. 그 시선과 목소리가 그들을 행동하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