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정부가 국내 항공업계에 경쟁 체재를 도입하기 위해 제2민항사로 금호그룹을 선정해 발표한 것은 1988년 2월12일이었다. 대한항공 측에서는 이 같은 기류를 감지하고 저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으나 허사였다. 당시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있던 필자는 항공사 취재가 사회부 소관인데다가 대한항공의 창업자 조중훈 회장은 인천에서 선친(汗翁 신태범 박사)과의 친분으로 잘 아는 사이여서 청와대 발표 며칠 전에 조회장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 “겨우 숨을 돌릴만 하니까 안팎으로 싸워야 하겠군”이라면서 체념과 각오를 동시에 다짐하던 조회장의 결연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제2민항사를 창업하게 된 금호그룹에서는 서울항공 이름으로 일단 회사를 설립하고 국무총리를 지낸 황인성 씨를 준비위원장으로 옹립했다. 언론사에 근무하면서 해외 취재와 올림픽 유치 등 필자의 국제활동 경력을 아는 황 위원장의 요청으로 준비모임에 몇 차례 나가서 항공사명을 노스이스트(동북)와 아시아나를 놓고 토론 끝에 아시아나로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거대국가를 제외하고는 단일 항공사가 국제선에 취항하고 있고 기존 회사끼리 국경을 넘어서도 합병을 하는 시대에 복수 항공사 시대를 열게 된 현실이 우려되기도 했다. 그러나 여객과 화물 등 항공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공존하면서 사세를 계속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 성장과 함께 국제화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후발주자 아시아나가 기내식 등 서비스를 한 단계 격상시킨 것도 긍정적인 역할로 평가된다. 아시아나는 세련된 색동 마크와 기체를 은은한 중간색으로 치장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회사 이미지로 정해 국제선에서도 대한항공과 선의의 경쟁을 통해 노선을 확충해 나갔다. 한 번 취항한 도시는 끝까지 지키는 의리와 뚝심을 상대국에서 인정받는 측면도 있었다.

▶금호산업이 지난해 아시아나 항공 매각을 발표한 것은 아시아나가 적자 회사로 전락했기 때문이었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을 합병하면서 몸집을 키워온 금호산업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게 되면서 31년에 걸쳐 국내외 경쟁을 용하게 극복해 나가면서 성장하고 생존해온 아시아나를 포기하고 매물로 내놓은 것이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전제로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지만 코로나 사태가 덮치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전세계 항공산업이 침체국면에 직면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대한항공도 가족간의 주도권 싸움이 현재 진행형이고 근시안적인 국토부는 저가항공사를 대폭 늘려 놓은 상황이다. 아시아나에 시한부 산소호흡기를 제공하기보다는 국유화가 정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