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 논설위원

인천은 개항(1883년) 이후 획기적인 변화를 맞은 곳이다. 비록 외세에 의한 강제개항이었어도, 문을 연 뒤엔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했다. 온갖 서양 문물이 서울로 가기 전 머물렀다. '인천이 최초·최고'가 수두룩했다. 전국 8도인들도 일을 찾아 인천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자연히 갖가지 시설·상점·풍경 등과 함께 인물도 넘쳐났다. 당시 일간·월간지에선 그 풍성함과 화려함을 기사로 내보내기 일쑤였다.

이랬던 인천은 한국전쟁 때 쑥대밭으로 변했다. 그 유명한 인천상륙작전(1950년 9월15일) 포격으로 폐허가 되다시피했다.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각종 시설은 거의 모두 하루 아침에 파괴되고 말았다. 이어 불어닥친 냉전(Cold War)에 휩싸여 인천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외국으로 향하던 뱃길들도 끊기면서 스스로 고립됐다. 특히 '서울의 그늘'로 치부되면서, 인천은 '줏대 없는' 도시로 전락하는 듯했다. 대표적인 게 서울·경기·인천지역 쓰레기를 처리하는 수도권매립지다. 인천시민의 희생으로 쓰레기 반입을 시작(1992년 2월)한 후 아직도 사용한다.

여기에 서울에 가려진 문화예술 분야가 거론된다. 한동안 인천시민들은 어지간하면 문화예술을 향유하러 서울로 빠져나갔다. 그만큼 인천에서 펼치는 문화예술 행위가 미덥지 못하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총체적인' 문화예술의 경우 서울이 나을 수 있지만, 개성을 살린 지역의 그것도 볼 만하다. 지난 1994년 인천문화예술회관이 들어선 이후 서서히 개선되곤 있지만, 아직 요원한 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시립예술단 단원 중 인천 출신이 고작 20%에 그쳐 아쉬움을 준다. 시립예술단이 지역 문화예술 공급을 위해 존재하는 터에,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현재 시립예술단원은 모두 235명. 교향악단 97명, 합창단 61명, 무용단 47명, 극단 26명, 홍보마케팅 4명으로 나뉜다. 이중 인천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기준으로 구분했을 때, 인천 출신은 48명으로 20% 가량을 차지한다. 나머지 187명은 타 지역이다. 지역 출신을 우선 채용하자는 법규도 있는 마당에 너무 '무심'한 듯싶다. 시립예술단은 시 예산으로 운영되는 데다, 인천시민 정서함양과 지방문화예술 창달을 위해 설립되지 않았나. 인천시립예술단 설치 조례에 따르더라도, '단원 채용 시 관내 지역주민을 우선 위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임의규정이라 강제성은 없다.

물론 뛰어난 기량을 보이는 문화예술인을 인천으로 끌어들이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 인물들은 지역에 상관 없이 뽑아야 마땅하다. 그래야 지역의 문화예술 수준도 함께 높아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만그만한 자질이라면, 인천 출신에게 가산점을 주는 등의 개선책을 세워야 한다. 더구나 인천처럼 문화예술 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 공부를 했다면, 독려 차원에서라도 그렇게 해야 맞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다양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