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준 논설위원

국민들은 어떤 형태로든 '집단행동'이 펼쳐지면 불안해 한다. 한 집단이 작심하고 기치를 들고 나서면 일상생활 피해로 이어지는,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단행동 성공 여부는 별개다. 역대급은 화물연대가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을 때다. 국민들이 '섬뜩하다'고 했으니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될 리가 없다. 결국 파업은 실리를 얻지 못한 채 국민들에게 집단행동 혐오를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의료계 파업에 대해 “전시상황에서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과 마찬가지”, “사상 최대의 화재가 발생했는데 소방관들이 화재 앞에서 파업하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말했다. 평소답지 않게 자극적인 언어를 구사해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현실에 부합되는 비유인 데다 의사 파업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뒤를 받쳐주었다.

서울대 교수들은 제자들의 뒷배를 자처하고 나섰다가 지성이 의심받는 상황에 처했다. 서울대 교수진은 성명을 통해 “의대생들이 휴학계를 제출하고 국가고시를 거부한 것은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에서 비롯된 순수한 열정의 산물”이라고 강조했다. '의대정원 확대 반대'로 포장된 원초적인 밥그릇 문제를 '순수한 열정의 산물'로 승화시켰으니 제자 사랑이 대단하다.

의료계가 현실을 외면하고 이익단체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가운데서도 올곧은 소리가 나와 그나마 위안이 된다. 김동은 대구 계명대 교수는 “세상이 아플 땐 의사도 아파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아픈 적이 있을까요. 이럴 땐 화가 나도 환자들 곁에서 같이 아파해야 합니다. 덩그러니 벗은 가운을 보면 환자들은 더 아프지 않을까요”라고 밝혔다.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코로나 확진이 수도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의사들이 파업으로 국민에게 불안감만 주며 의료공백을 가중시키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의사와 함께 최일선에 섰던 간호사들도 생각이 다르다. 대한간호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간호사들이 의료현장에서 바라볼 때 의대정원 확대는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이 와중에 역겨운 것은 정부와 의료계 틈을 비집고 들어와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정치인들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집에 불이 났는데 가장이라는 사람(대통령)이 물통이 아니라 기름병을 들고 나타난 꼴”이라며 “무조건 찍어누르고 윽박지르면 문제가 해결되나”라고 밝혔다. 즉각 “기름병을 들고 나타난 사람은 당신”이라는 댓글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