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지하' 보물창고…웬만한 박물관은 명함도 못 내밀겠네
초기 교련복·교지도 볼 수 있지만
'인천 학술진흥 기여' 대학목표 맞게
1980년대부터 조사 연구·수집 노력
유물 1500점·자료 1만2000권 보유
선사유적 발굴·유적지도 간행 성과
50~60년 하와이교포 내방 담은
'50년만의 귀향' 특별전 진행 중
▲ 1993년, 지역사회 발전을 모색하며 개통한 지역 최초의 정보통신망 '인디텔'. 이름은 인천의 '인', 디지털의 '디', 텔레폰의 '텔'자를 따왔다.

 

▲ 대우자동차의 전신 신진자동차가 1967년부터 일본 도요타 차를 국내로 들여와 조립 생산한 '퍼블리카'.

 

 

1954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공업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대학을 세웠다. 지금 인하대학교의 전신인 인하공과대학은 이렇게 생겨났다.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원은 하와이 교포 2세 교육을 위해 이승만이 설립·운영했던 한인기독학원을 처분해 마련했다. 여기에 하와이 교포들과 국내 유지의 성금, 국고 보조금 등으로 충당했다. 이후 1968년 인하대는 한진그룹에 인수, 학교법인 인하학원으로 개편됐다.

한진그룹의 고(故) 조중훈 회장이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후 197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했다.

이런 인하대의 유서 깊은 전통과 인천의 대학으로 자리매김한 역사를 담아 놓은 공간이 있다. 바로 인하대학교 박물관이다.

대학 내 위치한 박물관은 인천의 유일한 대학 박물관으로써 지역의 유물 수집과 발굴, 조사 작업 등에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박물(博物) 기능을 뛰어 넘은 연구기관

1976년 개관한 인하대학교는 '인천지역의 학술적 진흥에 기여하자'는 목표를 갖고 있다.

조사와 연구, 유물수집, 전시,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인하대 박물관은 지역문화 조사와 연구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환황해권을 비롯한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연구까지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박물관에는 관장을 비롯한 역사·고고 전공자들이 연구에 매진하며 매년 역사기행과 학술회의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박물관은 전시실과 학예실, 자료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유물 1500여 점과 1만2000여 권의 학술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1980년대 처음 실시된 서해도서지방에 대한 학술조사를 시작으로 문학동 선사유적의 발굴, 대곡동 고인돌군의 확인, 인천시 문화유적분포지도의 간행 등을 통해 인천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학문적 기반을 제공한 것이 그간 인하대학교 박물관이 이룩한 대표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하대 박물관이 한때는 존폐 기로에 놓이기도 했다. 사립대학의 제한된 재정과 인력이라는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하대는 44년간 박물관을 꾸준히 성장시키고 유지하며 이제는 인천지역 역사와 문화 연구에 있어 공고한 위치를 다졌다.

 

#상설전시실

상설전시실에는 1980년대부터 박물관 발굴조사단이 인천지역 내 유적에서 수습한 각종 유물과 함께 근현대 생활사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선사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는 인천지역의 역사를 두루 체험할 수 있다.

또 거족적 염원을 담아 세워진 인하대학교의 아카이브 기관으로써 학교의 설립과 변천에 대한 전시도 제공한다.

특히 인하대 박물관팀이 문학산에서 발굴한 '백제 타날문 토기'는 비류백제의 전승을 가진 문학산 일대가 백제 문화와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증명한 중요한 유물로 손꼽힌다.

 

#학교사 전시실

학교사 전시실에는 인하공과대학의 설립과 초창기 운영부터 종합대학으로 도약해 지금의 인하대학교로 우뚝 서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재단법인 인하학원 설립신청의 건 보고안과 인하공과대학 학칙, 결의문 등 학교 설립의 기초가 된 근거부터 인하대 학훈과 교가 등도 전시돼 있다. 초창기 학교 생활을 말해 주는 교련복과 인하대 마크를 새긴 허리띠, 학생증, 배지, 성적표, 시험지 등도 볼 수 있다.

80년대 약 40만원이 찍힌 등록금 영수증과 교지 창간호 등도 주요 유물이다.

인하대 박물관 앞에는 오래된 빨간 자동차가 박물관의 상징물처럼 서 있다.

이 자동차는 대우자동차의 전신 신진자동차가 1967년부터 일본 도요타 퍼블리카를 국내로 들여와 조립 생산한 것이다.

697㏄ 28마력 엔진을 장착한 소형차로 국민차 시대를 열고자 하였으나, 당시 국내 도로 사정이 좋지 못한 점과 낮은 국민소득으로 많이 팔리지는 못했다. 인하대학교 사학과 이충희 교수의 기증으로 박물관이 확보하게 됐다.

1993년 전국 최초의 지역정보통신망인 인천정보통신시스템 '인디텔'은 희귀 유물이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디텔은 인하대 전자계산소와 인천상공회의소, 인천일보가 함께 만들었다.

박물관은 지난해부터 특별 사진전을 진행하고 있다.

인하(仁荷)가 1902년 인천에서 출발하며 시작된 하와이이민의 역사와 고국을 향한 동포들의 마음을 나타내는 단어로, 국내 명문 사학의 이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취지다.

'50년 만의 귀향 : 1950~60년대 하와이교포단의 내방과 교류'라는 제목의 특별전으로 학교 설립의 토대를 마련해준 하와이 교포와의 교류를 교내 소장자료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윤승준 인하대학교 박물관장 “학교 내 전문가 많아 상시 학술적 구성 장점”

 

▲ 윤승준 인하대학교 박물관장
▲ 윤승준 인하대학교 박물관장/사진제공=인하대학교

 

박물관을 맡는 동시에 인하대 사학과 교수인 윤승준(사진) 관장은 인하대 박물관이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여타 일반 박물관과 다르게 인하대 박물관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습니다. 우선 대학 안에 전문가들이 많기 때문에 상시 학술적 구성이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지자체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역사 고증을 뒷받침 할 수가 있습니다.”

윤 관장은 인하대가 이미 가지고 있는 유물도 널리 활용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전통방식의 한국 선박은 지금 똑같이 구현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인하대는 모형배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향후 조성될 국립해양박물관 등이 주요 콘텐츠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박물관에 이어 대학 기록관 추진까지 검토하고 있는 윤 관장은 탄탄한 박물관 운영을 위해 공간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학교 학생들 조차도 박물관 존재를 모르는 이가 많습니다. 본관 지하에 있는 다소 외진 곳에서 독립된 공간으로 박물관을 이전한다면 학교의 명성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