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은 어느 한 분야에서 큰 업적을 남기고 존경을 받는 사람을 기념하는 장소나 모임이다. 명예의 벽(Wall of Fame)이나 명예의 거리(Walk of Fame)라는 형태도 있다. '위대한 미국인 명예의 전당'이 원조로 꼽힌다. 뉴욕시립대 브롱크스 커뮤니티 칼리지의 반원형 옥외복도에 있는 102명의 흉상들이다.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라함 링컨, 앤드류 카네기 등 익숙한 인물들이다. 한국인들에게 더 친숙한 것은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 오거스틴에 있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이다. 외환위기 당시 맨발의 투혼으로 국민들을 위로했던 박세리 선수가 헌액돼 있는 곳이다.

▶업적과 존경을 기리는 명예의 전당은 이제 일본, 한국 등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이나 디자이너 명예의 전당도 있다. 한국경영학회는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기업, 기업가, 공직자가 헌액 대상이다. 지금까지 10명의 기라성 같은 기업인들이 올라있다.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현대 정주영, 롯데 신격호, 한화 김종희, 한진 조중훈, 포스코 박태준, SK 최종현…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고 전력질주로 헐벗은 나라를 살찌운 이들이다. 하나 의아한 점은 처음으로 '세계 경영'의 기치를 휘날렸던 대우 김우중 회장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연구실의 학자들은 치열한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쳐준다는 뜻인가.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이 지난 주 '대한민국 기업 명예의 전당' 기업가 부문에 헌액됐다. 비영리 공익재단의 설립_경영으로 이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로는 이 회장이 유일한 셈이다. 한국경영학회는 특히 기초 의과학 분야에 대한 이 회장의 과감한 투자를 높이 평가했다. 뇌과학연구원이나 암_당뇨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원 등은 삼성_현대가 키워낸 병원들도 못해낸 일들이다. 바람이 세찰수록 더 빨리 돈다는 '바람개비 정신'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하다.

▶오래 전 어느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가 이 회장에게 물었다. 가천(嘉泉)이라는 호(號)는 어디서 온 것이냐고. 이 회장은 옛 고향 마을에서 따온 것이라고 했다. 옛 전북 옥구군 대야면 죽산리 어딘가에 물 맛 좋은 우물이나 샘이 있었는지, 아니면 비슷한 지명이 전해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늘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의 눈매도 그 날만큼은 향수에 젖은 듯 했다. 소떼를 몰고 북녘 고향에 간 정주영 회장의 호 아산(蛾山)도 강원도 통천의 고향마을 이름이다. 어릴 적 떠나 온 고향 산천을 두고두고 그리는 마음이 오늘의 가천을 있게한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