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옆에는 작은 놀이터가 있다. 동네마다 숨은 듯 있는 손바닥만한 곳에서도 보인다. 쉴 새 없이 뛰놀아야 살아 있을 수 있는 작달막한 아이들. 보는 것만으로도 내 삶까지 충전되던 장면들을 비껴 서서야 본다. 마스크 안에서 뻐끔대는 아이들 숨결이 심장박동 소리까지 잡힐 듯 갑갑하다. 이 시대가 동시에 겪는 고통이지만 아이들 숨길조차 가로막은 입가리개 앞에 서면 우리가 지어온 업보를 되뇌지 않을 수 없다. '저 어린 것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 내 어릴 적 어른들이 내뱉던 한탄에 배인 회한이 이런 것이었을까. 도대체 지금 태어난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은 어디까지 끔찍할까?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 인류가 될 것.” 김누리 교수의 경고음이 비상등처럼 점멸한다.

코로나19가 비상이 아니라 일상이 된데다 사상 최장 장마까지 겹쳐 지났다. 폭염이 와 있고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린다. 다음 세대에게 남겨 줄 미래라는 게 있을까, 있다한들 어떤 흉물일까, 마음이 마음이 아닌 나날이다. 미래는 원래 희망과 짝을 이뤄 왔고 내 세대는 그 수혜자였다. 국민학교 교과서에서 주술처럼 읽었던 '마이카시대'라는 예언을 진즉에 목도했다. 다리를 얻으려 혀를 내줘야 했던 동화처럼 얻는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도외시했을 뿐, 차를 얻은 데 빠져 살다가 숨 쉴 공기를 잃었다.

미래를 낙관하던 시대에 교육은 희망에 취해 있었다. 오늘 쌓은 공부가 미래를 만들어 낸다는 가르침을 토 달지 않고 따랐다. 교육과 희망이, 통 큰 낙관이 미래와 붙어 다녔던 그 시대에는 '백년지대계'가 풍미했다. 코로나19가 교육현장을 조변석개로 뒤집어 놓는 오늘, 계획은커녕 땜질 대책마저 무용하다. 수비만 하는 침대축구를 보듯 방어에 급급한 대응책이 미덥지 않다. 미래와 담판하면서 승부수를 띄워 공세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선견이라 할 위기대응책으로 '10만 양병설'이 있었다. 이순신이 민심을 모아 전비를 구축하던 백척간두 시절, 조정은 실천으로 뒷받침하지 못했다.

교육은 시민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게 우선이어서인지 돌다리를 부서질 정도로 두드려 보고야 장기정책을 내놓는다. 학교 현장이 초과밀학급에 치이던 20년 전, '7.20교육개선 조치'는 3년 만에 급당 학생수를 평균 35명으로 끌어 내렸다. 교원도 확충했고 교육 용지를 자투리땅까지 탈탈 털어 학교와 교실을 지어댔다. 당시로서는 획기적 조처였다. 초등 교원 부족 사태를 예견하고 중등 자격 소지 교사를 초등학교에 임용한 사건도 있었다. 미구에 닥칠 위기 신호를 먼저 감지하고 밀어붙인 '중초임용', 특단의 대책이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한국판뉴딜'은 내게는 '물 없이 고구마 몇 개 먹은' 감으로 와 있다. 아이들 입에서 마스크를 떼겠다는 간절함을 읽을 수 없다. 평교사 출신 강민정 의원은 “파리에서 자동차를 없애겠다는 신임 파리 시장, 2022년까지 원전폐쇄를 완료하겠다는 독일……, 한국형뉴딜은 공적 지원으로 여전히 '더 많이 파는 세상'의 틀 안에 갇힌 해법”이라고 썼다. 교육 변화를 끌어가는 기관차 노릇을 디지털 기기에게 맡길 수 있을까? 비대면 수업 환경만 조성되면 코로나19 환경 재앙시대를 넘어설 전략이 나올까? 어디에 사람이 보이는가 뒤지다가 '디지털_그린 인재 12만 명 양성'에서 숨을 몰아쉰다. 'AI,SW핵심인재' 10만 명, '녹색융합기술'에 2만 명을 양성하겠다지만 유초중고 학교 현장과 연계전략이 없다.

교원 정원을 확정해야 하는 시기와 맞물려 비상대책을 모색한다. 12만 명 인재 중 일부를 녹색 교원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어떨까? 교원총원 1%를 증원하고 그 숫자만큼 현장에서 자원한 교사를 기후재앙(녹색)체험연수 과정에 1년 배치한다. 그렇게 10년간 10%의 교사를 코로나19 위기 기후재앙에 맞서는 용자로 무장시키자. 안식년 제도를 '기후재앙체험년'으로 바꾸어 운용하면 인력 충원 규모도 조정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