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현 박사·경기연구원 도시주택연구실

필자가 일본에서 4년반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가장 설레면서 방문했던 곳 중 하나는 요코하마였다. 물론 일본 전국 최초로 1968년에 시작된 도시디자인실이라는 선진적 행정을 갖춘 요코하마가 만든 항구도시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부분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남아있던 내항의 곡선과 아카렌카 창고 벽돌의 감촉, 현대화된 고층건물을 관통하여 보여지는 야마시타 기찻길, 미나토미라이의 현대적 주거속에 남아있던 미츠비시 조선소 도크의 처절함이었다. 하나하나의 디테일은 그곳이 항만의 노동과 산업개발의 장소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으로 그 공간의 정체성을 종합적으로 재현하는 장치이다. 올해 기준으로 일본에서 가장 살고 싶은 거리로 요코하마역 주변이 1위로 뽑힌 이유는 항만의 역사성, 수변공간의 자연환경, 그리고 현대적 수요에 맞는 품격있는 주거와 상업공간의 조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의 내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얘기하는 데 있어, 축소도시 디자인 전략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과연 이곳에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에 대해 논하기 위함이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구조물이든, 현대화된 디자인이든, 정교히 고안된 경관축이든 결국 무엇을 보여주는게 목적인가에 따라 내항의 디자인을 철저히 재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축소도시 전략은 도시의 성장 싸이클을 고려하여 무조건적인 인구와 고용증가를 유도하기 보다는 시민의 삶의 질을 충족시키도록 적정규모의 효율적 토지이용을 유도하는 계획전략이다. 도심의 성장, 교외화 그리고 도심공동화를 경험한 인천의 구도심은 미래의 성장거점으로서 양정팽창이 아닌 질적 성장을 위한 변화를 거쳐야 한다.

첫째로 자연으로의 회복이 중요하다. 삶의 질을 좌우하는 주요 지표 중 하나인 1인당 녹지면적의 경우, 인천은 2005년대비 2018년 65%로 줄어들었다. 이는 서울(98%)이나 경기도(85%)에 비해 매우 급격한 감소로 볼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도시공원 일몰제에 맞추어 지자체들이 각기 야심차게 아파트나 주상복합으로의 변신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는 자연녹지지역의 개발차익을 노리는 개발사의 의지와 도시공원 일몰제의 시간적 제약이 주는 초조함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하는 녹지라는 공공의 자산이 특정집단의 사유화된 자산으로 둔갑하는 데에는 공공의 책임이 누구보다도 크다. 지금의 내항은 그간 인천이 잃어버린 녹지면적을 대체하여 항만의 수변공간을 있는 그대로의 자연으로 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두번째 내항의 탄생과 발전과정의 진정성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역사적 자산을 보존하고 적극적으로 디자인의 모티브로 활용해야 한다. 만석동과 화수동에 걸쳐 남아있는 조선기계제작소 도크와 세관의 흔적들, 정미소와 양조장, 관련창고들과 사택들, 새우젓 골목 그리고 동일방직과 일꾼교회, 기차길 옆 공부방 등 일제강점기에서 민주화시기에 거쳐 형성된 많은 인천만의 스토리이자 한국의 스토리인 역사자산들이 있다. 이들을 연계하여 산업유산의 길, 노동인권의 길로 통합적인 역사환경으로 보전하고, 세심한 디자인으로 연계하여 인천의 내항만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방문자들에게 인지시킬 수 있어야 한다.

세번째 항만의 배후가 아닌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백년의 구도심에 전망을 주는 내항의 역할을 재정립 해야 한다. 인천내항은 동양 최대의 갑문으로서 수도권 물류 이동의 핵심 거점이었다. 근대적 도시계획 수법을 통해 대공업 전용지역으로 개발된 근대적 공업도시의 새로운 모델이었던 것처럼 앞으로의 백년을 위해 구도심의 신성장을 위한 인프라가 창조되어야 한다. 무엇이 구도심에 신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천천히 시민과의 대화 속에서 나와야 한다. 개발차익과 기부채납이라는 미명하에 필요성이 검증되지 않은 무리한 개발을 밀어붙이는 방식은 이해집단들과 지자체의 욕망이 만들어낸 현대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질적 균형이란 측면에서 그간 송도에 빼았겼던 구도심의 공공시설과 첨단시설을 회복하고 재정비해야 할 때이다. 인천 내항의 개발사업이 2007년 국민청원으로 시작된 만큼, 의견수렴 대상이 아닌 내항을 새로이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인천 시민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내항은 구도심 미래의 백년을 위한 회복의 장소이면서 동시에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설렐 수 있는 비움의 공간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