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국 공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해 ‘인천지역 민간인이 다수 희생됐다’는 기존의 조사결과가 새롭게 발굴된 미국 측 보관자료에 의해 다시 확인됐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은 지난 20일 오후 인천 남동구 구월동 YMCA에서 개최된 제3회 인천시민평화강좌에서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등에서 찾아낸 인천상륙작전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이 자료들은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극동총사령부, 미8군, 10군단, 해병1사단, 7합동기동함대의 1950년 8월의 작전 계획, 1950년 9월 작전명령 14-50호, 서울과 인근 지형연구 13호 등이다.

 

# 민간인 보호조치나 대피 경고 없는 미군의 무차별 폭격

▲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이 공개한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의 융단폭격 대상 지역 작전지도

전 연구원은 이 자료를 토대로 미군의 인천상륙작전을 작전 준비, 상륙 전 초토화, 인천 상륙, 확산 등 4단계로 구분했다.

미군은 ▲1950년 7월 15일부터 9월 2일까지 작전 준비, ▲상륙 이전인 9월 10일부터 14일까지 월미도와 인천 초토화, ▲15일부터 17일까지 상륙 완료, ▲이후 12월 9일까지 서울-군산-대전으로 전선 확대 등의 순서로 작전을 전개했다.

이 과정에서 실행된 미 해병1사단의 상륙작전 계획서 No. 2-50(1950.9.05)는 월미도와 인천 시내에 산재한 방어시설과 각종 무기를 공격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방어시설 인근 민간인 구역에 대한 주의 또는 경고 사항은 발견되지 않았다.

극동해군사령부 작전 계획 108-50(1950.9.2)은 월미도와 인천지역에 총 39곳의 공격 목표물을 선정했지만, 민간인 거주지를 공격하지 말라는 지침은 빠져있다.

7함대 사령부 작전 계획 9-50(1950.9.3)은 9월 10일부터 월미도, 강화도, 교동도 등지의 섬과 인천 시내, 서울, 수원, 대전 등지에 대한 항공기 폭격하도록 계획됐다.

여기에도 민간인 보호 또는 소개 내용이 없으며 첩보에서도 민간인 거주지와 폭격 인근 지역의 민간인 보호조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재산 피해 초래

▲ /사진제공=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

미군은 이처럼 민간인에 대한 보호조치나 대피 경고 없이 무차별적으로 포격과 항공기 폭격을 자행해, 월미도를 비롯한 인천지역에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초래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을 조사해 2008년 8월 27일 발표한 보고서는 이때 벌어진 참상을 입증하고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월미도 거주 민간인들은 한국전쟁 시기인 1950년 9월 10일 인천광역시 월미도 마을에 가해진 미군의 폭격으로 집단 희생됐다”고 밝혔다.

해병대항공단의 항공기들은 월미도 동쪽에 민간인 밀집 주거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95개의 네이팜탄을 투하하고 기총소사하여 1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것으로 추산했다.

보고서는 “미군의 월미도 폭격에 대한 군사적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폭격 이전이나 폭격 중 식별할 수 있었던 민간인의 희생을 줄이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월미도 전체를 무차별 집중포격하고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고도에서 주민에게 기총소사까지 한 것은 국제인도법, 전쟁법의 민간인 면제규범에 의한 민간인 구별의 원칙,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 민간인도 전쟁포로 취급

미 해병 1사단 상륙작전계획서는 또 전쟁포로 처리에 대해 “통상적인 전쟁포로의 정의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는 민간인이라고 하더라도 억류된 모든 적은 전쟁포로로 취급될 것”이라는 원칙을 수립·시행했다.

전 연구원은 “미군의 원칙은 월미도와 인천지역의 모든 사람은 전쟁포로로 취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 진실화해위원회의 추가 조사 및 보완조치 여부 관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보고서는 “월미도 주민들은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입었으며 그 이후에도 월미도가 군사기지로 되면서 유족과 거주민은 50년이 넘도록 고향으로 되돌아가지 못하는 큰 고통을 겪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위원회는 해결방안으로 한국과 미국 정부 간 협상을 통해 ▲희생자 위령 사업 ▲원주민 귀향 지원 ▲공시기록 등재 ▲법적·제도적 정비조치 ▲국제법 정신 함양을 위한 교육 등을 실시할 것을 권고했다.

위원회는 지난 2010년 조사 활동을 끝으로 해산했으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지난 5월 20일 국회에서 통과돼 올해 연말부터 활동을 재개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월미도 민간인 피해에 대한 추가 조사와 보완조치가 추진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월미도 피해자들과 실향민들은 이와 관련, 지난 1952년부터 고향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과 천막농성을 거듭했고, 국회에서도 특별법 제정이 수차례 논의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인천시의회에서는 2011년 이후 발의와 재의를 거듭한 끝에 지난해 9월 월미도 실향민에게 소액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과거사 피해주민 귀향 지원을 위한 생활 안정지원조례’를 가까스로 확정했다.

 

# 민간인 중심의 인천상륙작전 연구와 서사 필요

▲ /사진제공=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갑생 연구원

전 연구원은 “6.26 전쟁이 끝난 뒤 맥아더의 리더십과 연결된 ‘성공한 상륙작전’, ‘한국을 구한 위대한 상륙작전’ 등의 서사구조가 재생산됐으나, 폭격으로 희생된 민간인의 역사는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월미도를 비롯한 인천지역 폭격 양상을 세밀하게 분석해, 새로운 시각에서 인천상륙작전을 연구해야 하며, 군사적인 틀에서 벗어난 민간인 중심의 서사가 요구된다”고 밝혔다.

 

# 생명평화포럼, 2차 평화순례 및 4차 인천시민평화강좌 개최 예정

인천시민평화강좌는 생명평화포럼이 인천시의 후원을 받아 ‘2020 인천시 평화도시 공모사업’으로 진행하는 행사다. 이날 세 번째 강좌는 ‘인천상륙작전, 어떻게 볼 것인가?(미 국무부 문서로 본 인천상륙작전)’를 주제로 개최됐다.

생명평화포럼은 평화순례 두 번째 행사로 오는 29일(토) 옹진군 영흥도 미 해군첩보기지 터를 찾아 인천상륙작전 사전 첩보 수집 과정에서 벌어진 미군의 민간인 학살사건 현장을 탐방한다.

9월 10일에는 최태육 (사)한반도통일역사문화연구소장으로부터 ’인천상륙작전/공포의 기억과 승리의 기억‘을 듣는 네 번째 인천시민평화강좌를 이어갈 예정이다.

/정찬흥 논설위원·인천일보 평화연구원 준비위원 report6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