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

 

최근 고인이 된 전 서울시장 박원순과 백선엽 장군 사후 처리를 놓고 사회가 시끄러웠다. 박원순 시장 장례를 꼭 서울시 장(葬)으로 해야 했느냐는 원성도 나오고, 백선엽 장군 장지를 꼭 대전현충원으로 해야 했느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는 또 다른 목소리로 친일반민족행위자를 왜 현충원에 안장하느냐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한때는 사회로부터 추앙받던 사람들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생각을 하며, 우리 사회에는 정녕 모든 국민이 추앙하는 큰 바위 얼굴은 없는가 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너새니얼 호손이 쓴 '큰 바위 얼굴'을 교과서에서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이, 우리 사회에도 이런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당시(1960년대 중반)에 주변을 돌아보면 큰 바위 얼굴 모습을 띠고 있는 분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과 비교하여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지만 동네에 온화한 얼굴의 할아버지들, 마을 앞을 지나가면 “아버지는 집에 계시냐? 밥은 먹었냐?”고 묻는 어른들, 밭일을 하다 “오이 하나 먹고 가라”고 주던 아주머니들 모두 지금 생각하면 큰 바위 얼굴의 모습을 하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은 더 발전하고 살기 좋아졌다고 하는데 왜 이런 큰 바위 얼굴을 가진 어른들은 사라진 것일까?

완전한 인간은 없다.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합리적 병사는 전쟁을 하지 않고, 합리적인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변명(?)했는지 싶다. 인간은 완전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전쟁도 하고 결혼도 한다. 이런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회에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기본은 갖춰야 한다고 일반 시민들은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박원순과 백선엽 죽음을 보면서 기본을 갖추는 게 만만치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박원순 시장, 참 많은 일을 했다. 시민운동의 대부로서 국가운영에 시민과 소통이 중요하고 공론의 장을 통해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이 추진되어야 바람직한 사회라는 것을 직접 실현하려고 노력을 했다. 이런 분이 어쩌다 비서를 성추행하여 미투사건의 피의자가 되었는지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역시 인간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백선엽 장군, 또한 국가를 위한 공로와 친일에 관한 비판이 만만치 않다. 광복 후 국군 창설에 주역이며 6•25전쟁의 영웅으로 추앙받는가 하면, 일제 말기에 간도특설대 장교로 복무하며 독립군과 싸우고 조선인을 감시•탄압하는 일에 앞장선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비난의 원성이 높다. 글쎄, 한 인간의 일생을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정말 혼란스럽다.

그런데 두 사람의 죽음을 보며 공통으로 느끼는 아쉬운 면이 있다. 박원순 시장은 죽음을 맞이하면서 피해자에게 진솔한 사과의 글 좀 남기지! 백선엽 장군은 생전에 친일문제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 좀 하지! 그러면 그들을 떠나보내면서 국민들 사이에 벌어진 공과 과에 대한 논쟁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예전에 살기가 어려웠던 시절에는 주변에서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 이웃 아주머니와 아저씨들 모두가 온화하게 보살펴주며 등을 두드려주고 설날 세뱃돈도 주는 큰 바위 얼굴로 보였는데, 살기가 더 좋아진 지금은 왜 이런 분들이 사라진 것일까? 동네 이웃과 어른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방식이 달라져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사니 이런 분들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니 TV 혹은 매스컴에서나 이런 사람을 접할 수 있는데, 이들이 이렇게 세상을 떠나니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허전하다.

그래, 인간은 완전할 수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완벽한 사람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본은 하자. 잘못했으면 솔직하게 사과하고 국민들의 평가를 받자. 그래서 최근에 5•18 민주항쟁 탄압 주범 중 하나인 노태우 전 대통령을 대신해 아들이 광주 5•18묘역을 찾아 사죄하는 모습을 보며, 늦었지만 그래도 민주항쟁 과정에서 희생된 영령과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전두환은? 박근혜 그리고 이명박은 과연 국민들 앞에서 사과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니 얼마 전에 작고한 정치풍운아 김종필이 남긴 '정치는 허업'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본받을만한 어른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칭송하는 큰 바위 얼굴이 짠하고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