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은 “개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존재하는 나라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평온할 때보다 어둡고 어려운 환경일수록 삶을 돌아보고 기약하게 된다. 스스로 인간다움에 대한 물음에도 침착한다. 하지만 삶의 의미와 인간다움에 대한 일률적인 정답은 있을 수가 없다. 제4차 산업혁명의 변화무쌍한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의 보장은 더욱 중요한 삶의 테마다.

또 문재인 정부의 목표는 '헌법 제10조의 시대'에 있다고 밝혔다.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확실히 보장하는 토대를 다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선언했다. 평등•공정하고 정의로운 민주 국가의 실현과도 같다.

광복 이후 75년의 세월 동안 대한민국은 각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다만 남북분단, 한일관계는 답보 수준이다. 4년 만에 다시 일본 정부각료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우리 광복절의 의미를 더욱 무겁게 한다. 침략전쟁을 용인하는 일본의 태도가 섬뜩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대한제국 시절 하와이, 멕시코로 노동이민을 떠나 조국을 잃고 돌아오지 못한 동포들을 기억한다”면서 “조국은 동포들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그분들은 오히려 품삯을 모으고, '한 숟갈씩 쌀'을 모아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며 해외 독립운동의 뿌리가 되어주었다”고 말했다. 인천은 돌아오지 못한 선조들이 밟은 마지막 땅이다. 1902년 하와이로 향한 우리나라 공식 이민의 첫 출발지다.

하와이 동포사회는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을 지원한 전초기기였다. 노동이민에 나선 그들은 하루 품삯 65센트의 사탕수수밭 노임을 모아 독립자금을 조성했다. 인천이 디아스포라의 영혼들을 기억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또 여기에 있다. 인천 월미도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세워진 이유다.

항일 독립운동의 이승만과 김구의 발자취도 인천에 남아 있다. 그들은 해방정국 우익 반탁의 동지였고, 해외 독립운동의 애국지사였다. 하지만 백범의 민족주의적 통일에 대한 주장은 아직 진행형에 머물고 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선열들이 꿈꾼 자주독립의 나라를 넘어 평화와 번영의 통일 한반도를 향해 국민과 함께 가겠다”며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제시했다.

1896년 20대 초반의 김창수(김구)는 일본인 쓰치다(土田讓亮)를 죽인 죄로 인천감옥에 투옥됐다. 몇 년 후 탈옥했다. 백범은 30대 후반에도 항일사건으로 인천 감리서로 이감돼 혹독한 인천항 축항공사에 동원됐었다. 1949년 6월26일 낮 서울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총에 맞아 74세의 일기로 운명했다. <백범일지>의 기록이다.

이승만은 1913년 박용만의 초청으로 하와이로 갔다. 하와이 대조선국민군단을 창설한 박용만은 도태되고, 1918년 대한인국민회를 설립한 이승만이 실권을 장악한다. 이승만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을 통해 민족 교육운동의 중심에 섰다. 한인기독학원의 매각대금 15만불이 바로 인천 인하대학 설립의 종잣돈이 됐다.

인천시 중구는 청년 김구 역사거리 조성사업을 추진해 왔다. 민족지도자 백범 김구의 인천 발자취를 재현하는 사업이다. 신포동에서 율목동 1.6㎞ 구간에 축항노역길, 옥바라지길, 탈옥길 등 탐방로를 만들어 내년에 준공할 계획이다. 1954년 이승만이 설립한 인하대는 내년 본격적으로 송도 사이언스파크 캠퍼스 조성에 나선다. 바이오클러스터를 육성하겠다는 포부다. 하지만 제2캠퍼스 건설에 쓰일 수익용 부지 확보를 놓고 갈등도 풀어야 한다. 백범과 우남, 뿌리를 보면 새로운 역사의 공존이다.

'인간다운 삶'은 매력적이다.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편 가르기'에 나서지 않는다. 말과 글에서도 편향된 주장이 비치면 거부감이 앞서게 된다. 편 가르기는 때와 장소, 위치에 따라 진정성이 의심되기도 한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단어 속에 이미 반쪽 반감대가 형성되기도 한다. 다양성이 없이는 상호견제가 흔들린다. 파벌을 거절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확대되는 광복절을 다시 기대한다.

 

김형수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