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진 등에겐 모금 수단 그쳐... 정부·사회 모두 관심 기울여야”

기록물 전문가들이 나눔의 집 사태에 공분하고 있다. 나눔의 집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그간 겪은 삶과 투쟁의 기록한 국가지정물을 소홀히 관리하고, 안전한 수장고엔 종교 서적을 넣어두면서다.

한국기록학회와 한국기록관리학회, 한국기록전문가협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등 4개 단체는 13일 입장문을 내고 “나눔의 집 조사단에 의해 밝혀진 사실 중 기록 방치·절멸의 문제에 정부와 우리 사회 모두가 주목해야 한다. 나눔의 집이 역사 전승과 기록 정의에 눈감음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갈 길을 틀어막은 반역사적 행위를 자행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나눔의집 민관합동조사단이 지난달 6일부터 22일까지 나눔의 집 현장 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록은 현재 나눔의 집 수장고와 교육관 1·2층 베란다, 생활관 1층 서가, 제1역사관 창고 등에 흩어져 있다.

장기 보존해야 할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록들이 훼손될 수 있는 장소에 방치된 사이 비교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할 수장고는 3분의 1이 비었고, 보관물 중에서는 불교 서적도 다수 발견됐다. 나눔의 집이 할머니들의 기록물보다 불교 서적의 보존을 더 중시한 셈이다.

나눔의 집은 지난해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증축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할머니들의 기록물을 건물 밖 주차장에 방치하기도 했다. 장마가 끝나지 않아 할머니들의 기록은 마대자루 등에 담긴 채 비를 맞아 훼손됐다. 이 과정에서 기록들이 훼손되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치된 기록 중에서는 국가지정기록물도 다수 있다. 국가기록원은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3060점, 125점 등 3185점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하고 나눔의 집에 보존을 위한 지원을 했다.

기록물 전문가들은 이런 나눔의 집의 기록물 관리 상태가 할머니를 대하는 자세를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단체는 “이러한 소중한 역사 기록들이 나눔의 집 이사진과 간부들에게는 단지 모금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나눔의 집은 국내외 전시 등을 개최해 홍보활동을 하면서, 전시 후에는 항공운송용 포장 상태 그대로 해당 기록들을 베란다에 방치했다”며 “할머니들의 마음을 그린 미술 작품들은 그것이 지니는 기록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지 못하고 그저 귀찮은 물건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고 주장했다.

나눔의집은 할머니들의 가장 기본적인 기록인 입퇴소 기록, 관찰일지, 간병일지조차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다. 대다수 기록은 분실됐고, 일부 남은 기록들도 생활관 1층 서가 등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나눔의 집에 일시 거주했던 할머니가 사회복지시설정보시스템에 등록된 16명인지, 다른 자료에 나온 28명 이상인지도 부정확하다.

단체는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는 조사단이 밝힌 나눔의 집 기록물의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한-일 간에 현안이 있을 때나 정치적 사안과 연관됐을 때는 정부와 온 국민이 나서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지만, 정작 문제 해결과 역사 전승의 핵심인 기록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특히 정부와 언론 전문가 집단은 이제라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기록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눔의 집 이사진과 간부 즉각 사퇴 ▲현존하는 기록에 대한 조사·즉각적 보호 조치 ▲민관합동조사단 조사결과 빠짐없이 공개 등을 요구했다.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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