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날은
날개 달린 날이다
현실이 사라지고
다른 현실이
태어난 날
그러니까 그날은
초현실의 날이다
훨훨 새가 날아오던 날
너를 만난 날은
만신창이가 되어
여름을 힘겹게 보내고
문득 가을이 오던 날
너를 만난 날은
필연의 날이다
머리에서 손이 빠져나오고
다리에서 얼굴이 튀어나오던
허리에서 설탕이 쏟아지던
불안 비참 치욕 따위가
지루하고 맥이 없던 날들이
모조리 일어나 빛이 되던
아아 내 어깨 쭉지에
문득 날개가 돋던 날
너를 만난 날
어디까지가 그리움인지
'너를 만난 날'을 이토록 환상적으로 노래한 시가 또 있을까. 너를 향한 욕망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머리에서 손이 빠져나오고, 다리에서 얼굴이 튀어나오고, 허리에서 설탕이 쏟아지겠는가.
이 시의 화자인 '나'는 불안과 비참과 치욕 따위가 지루하고 맥이 없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런 힘겨운 현실에서 '너'라는 대상은 현존이 아니라 부재의 세계, 곧 꿈의 세계로 이끄는 매개가 된다. '너'는 현실이 아니라 다른 현실, 초현실이 태어나게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너'는 현존 밖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존 속에 존재하며, '만남'은 부재를 현존 속으로 이끄는, 그러니까 욕망을 제대로 실현시키는 조건이 된다.
이 시에서 '너'와의 만남과 소통은 외적 현실보다는 내적 현실, 곧 욕망의 실현과 관련된다. 그 욕망(부재)이 현존 속에 드러날 때, '나'는 훨훨 새가 날아오르듯 만신창이의 날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그리움인지” 이 한 구절은, 너를 만난 날의 강렬함을 붙들고 있을 화자의 아련한 쓸쓸함마저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그 강렬함은 이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타고 남은 재가 기름이 되듯 그리움과 추억 하나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지루한 장마로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면, 문득 가을이 오던 날을 떠올리며 이 현실을 이겨보는 것은 어떨까.
/강동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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