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지역에 쏟아진 물폭탄으로 주거 공간을 잃어버린 이재민 중 대다수가 ‘비닐하우스’에 사는 이주노동자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이주노동자를 보호해야 할 고용노동부가 비닐하우스 숙소라는 열악한 실정을 알고도 정작 대책 마련에는 소극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관련기사 3면

9일 경기도와 이천시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이천 율면에 있는 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의 전체 입소자 72명 중 50명이 외국인이었다. 동시에 이곳에서 600m가량 떨어진 율면고등학교에는 입소자 30명 전원이 모두 외국인으로 나타났다.

이천시 관계자는 “지난 주말부터 이어진 집중호우에 100여명이 넘는 외국인이 대피소를 찾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 대부분은 숙소로 사용하던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겨 긴급대피한 이주노동자”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번 집중호우로 인해 이주노동자 다수가 이재민으로 전락한 이유는 이들이 사업자가 제공하는 형편없는 시설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18년 공개한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응답자(이주노동자) 1000여명 중 85%가 사업자 제공 숙소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이주노동자는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 같은 임시 숙소에서 살고 있다고 했으며, 숙소에 냉·난방 시설이 없다는 의견도 다수 나왔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숙소 제공·폭행·임금체불·근로조건 위반’ 등 이주노동자의 귀책이 없는 경우 사업주 동의 없이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것이 문제라고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이주노동자에게 추가 취업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장 변경 신청은 그동안 사업주의 동의를 받아야 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발표 후에도 여전히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일이 빈번할뿐더러, 이주노동자 역시 사업장 변경 신청을 망설인다는 점이다.

여기엔 비닐하우스에 대한 ‘정의’를 두고 존재하는 첨예한 입장 차이가 뒤따른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비닐하우스 숙소가 ‘불법’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관련 법에 따라 적합한 시설과 기준 등을 갖췄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반면 이주노동자 인권 보호 등에 힘쓰는 전문가들은 안전 문제를 유발하는 비닐하우스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 대표는 “이주노동자에게 비닐하우스 숙소를 제공하는 것도 모자라 임금의 20%를 월세 명목으로 빼고 있다”며 “가령 월 150만원을 받는 이주노동자는 비닐하우스에 산다는 이유로 30만원을 내야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상황이 이렇자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고용노동부가 이주노동자 주거환경 실태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숙식비 공제 등의 합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해마다 이주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해 300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을 하고 문제 발견 시 즉각 조치한다”며 “다만 비닐하우스 숙소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면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임태환 기자 imsens@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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