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조사서 피해 사례 드러나도 존재조차 몰라 주변인과 고민 나눠
정보 접근 한계로 피해자 발굴 난망…프로그램 홍보·상담원 교육도 부족
▲ 2015년 17일 수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에서 '북한이탈여성 성 인지력 향상교육 추진을 위한 소통 및 역량강화 워크숍'이 도내 31개 시·군 여성인권가 6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워크숍에 참석한 여성인권가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강의를 듣고 있다.

 

지난달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던 북한이탈주민 A(24)씨가 인천 강화군의 한 배수로를 통해 북한으로 넘어간 소식이 알려지면서, 북한이탈여성에 대한 성폭력 지원책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정부는 2013년부터 전국 권역별 위탁 상담소를 지정하고 북한이탈여성들의 폭력 관련 상담을 지원하고 있으나 프로그램 기획부터 사례 발굴, 홍보까지 모두 민간에 '떠넘겨진' 형태로 운영되면서 사업 효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탈북여성이 모르는 '폭력 상담소'

한국에 들어오는 북한이탈주민 대다수는 여성들이다. 인천에 거주하는 전체 북한이탈주민만 해도 73.8%가 여성에 해당한다. 이들은 남한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도 인신매매, 성폭력 등 다양한 위협에 직면하지만 우리나라에 정착하면서도 가정폭력, 성폭력 등의 인권 침해 상황에 놓이곤 한다. 2017년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북한이탈여성 폭력 피해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는, 북한이탈여성 158명을 대상으로 폭력 경험에 대한 조사한 결과가 제시됐다. 배우자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이들은 전체의 31.2%였으며 여기서 성폭력 비율은 9.5%에 달했다. 가정폭력을 당한 이들 가운데 배우자에 의해 성매매(21.4%), 유흥업소 종사(16.7%) 등을 경험했다는 응답도 있었다.

그럼에도 북한이탈여성 폭력 상담소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한국에 거주한 지 십여 년이 됐다는 북한이탈여성 손(55)모씨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손씨는 “북한이탈여성 대부분은 친한 이들끼리 고민을 나누는 데 그친다. 성폭력의 경우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며 “전담 경찰관을 통해 가정폭력 피해 구제를 요청해도 때론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거절하기도 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보여주기식' 정책에 그친다

현장 활동가들은 북한이탈여성 상담소가 '보여주기식' 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특히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이 하나센터 등으로 일원화돼 이뤄지는 상황에서 1년 단위로 선정되는 민간 상담소와는 유기적인 상담 프로그램이 이뤄질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윤진숙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성폭력상담소장은 “일반적으로 폭력 상황에 놓인 여성들이 제 발로 상담소에 찾아오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기본 정보도 알 수 없어 폭력 피해자들을 발굴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며 “이들을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별도 조직 신설이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현재 전담 센터 대부분 고용된 북한이탈여성 '동료상담원'을 통해 폭력 피해자를 찾아내고 상담하는 작업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상담소 차원에서도 내부적으로 한계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중이다. 전담 상담소 2곳을 운영하는 서울시의 '2017년 북한이탈여성 상담서비스 및 심리치유프로그램 결과 보고서'를 보면 ▲상담 프로그램에 대한 홍보 부족 ▲북한이탈여성 방문 기피에 따른 내방 상담 선호 성향 ▲동료상담원 전문 교육 필요 등에 따라 사업 추진이 부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중부지부는 “카페 형식의 상담실을 만들어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으나 방문 자체를 부담스러워 했다. 북한이탈여성들이 찾아가는 것을 선호하는 만큼 그에 따른 이동 교통비, 식비, 통신비 등 예산 지원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은희 기자 haru@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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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상처 입은 탈북여성들 두 번 운다 인천 북한이탈여성들의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을 상담하는 위탁 기관이 매년 바뀌며 안정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모습이다. 북한 배경 주민들의 특성에 맞춘 별도의 독립 조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6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북한이탈여성 심리 치유 프로그램'의 인천 전담 위탁 기관이 매년 교체됐다. 가장 먼저 천주교 인천교구의 인천새터민지원센터에 이어 다음 해 통일한마음지원센터, 햇살맑은심리상담센터 인하심리치료연구소, 서인천가족상담소 등이다.북한이탈여성 심리 치유 사업은 가정폭력·성폭력·성매매 등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