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결혼 적령기를 맞았다. 그런데 신혼집 마련을 두고 혼란에 빠졌다. 한참 동안 주택가격은 안정세였으나 전세가는 꾸준히 오르던 때다. 마침내 전세금이 집값을 넘어서는 '깡통 전세'까지 나왔다. 집 주인이 연락을 끊고 사라졌다는 얘기도 돌았다. 잘해야 낡은 주공아파트 10여평 짜리에 신혼살림을 차리던 때다. 전세금에도 가치가 못미치는 집을 사기도, 집값보다 비싼 전세를 들기도 애매했다.

▶여기서 베이비부머 신혼부부들의 희비쌍곡선이 빚어진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따른 임금 상승과 올림픽 특수가 겹쳐 곧 전세금뿐 아니라 집값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미심쩍은 가운데서도 집을 샀던 베이비부머들은 단숨에 준중산층에 편입됐다. 그러나 전세를 선택한 이들은 해마다 널을 뛰는 전세금을 충당하느라 숨이 가빴다. 1990년에는 두 달 사이 17명의 세입자가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깜짝 놀란 정부가 분당•일산•평촌 신도시 등에서 주택 200만호를 공급토록 했던 '88 전세파동'이었다.

▶전세는 한국의 독특한 주택 임대차 관습이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인 거류지 조성, 농촌인구 이동 등으로 서울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그러나 6·25전쟁과 경제개발 과정에서 도시 주택난이 심화되면서 완전히 자리잡았다.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세 제도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 한다. “왜 남의 집에 몇년씩 잘 살다가 나가면서는 돈을 모두 찾아가는 거지.” “집주인은 왜 공짜로 집을 빌려 주지.”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도시화 시절에 전세는 집주인과 세입자에게 모두 요긴한 제도였다. 집주인은 부족한 주택 매입 자금을 전세금을 통해 조달한다. 세입자는 월급에서 따로 주택비용을 지출하지 않아도 돼 미래를 위한 저축이 가능했다. 과거 고도 성장기, 급여생활자들은 '재형저축'을 부어 전세값 인상분을 충당했다. 그때는 전세금이 올라도 꿈의 내집 마련을 위한 종자돈으로 여겼다. 위의 베이비부머들 역시 단칸방 사글세나 전세, 빌라 전세, 아파트 전세 등의 단계를 거쳐 내집을 마련하곤 했다.

▶계약갱신청구권(2+2년)과 전월세상한제(5%) 시행으로 전세 종말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998년 IMF 사태가 터지자 집값•전세값 모두 반토막났다. 집주인들은 이사 나가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채워주기 위한 추가 자금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었다. '역전세난'이라 했다. 그런 고비를 겪고서도 살아남은 전세이니 이번엔 어떨지 궁금하다. 이제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인상 상한선, 반전세 전환 거부권 등의 복잡한 권리관계가 더 보태졌다. 앞으로 전국의 집주인•세입자 모두 걸핏하면 법정으로 달려가 서로 삿대질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정기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