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A가 지난해 여름 떠났던 해외여행이 간절하다고 했다. 상쾌한 아침을 여는 푸른 바다와 인생을 풀어놓듯 붉은 노을에 망중한(忙中閑)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다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만 그럴까. 하지만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하다. 비대면 시대를 살아가며 스트레스 장애, 정신적 외상을 겪는 심리적 고통이 우려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역적 문명 전환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7말8초'는 휴가의 적기였다. 해마다 삼삼오오 해외로 나가던 여행객들로 붐볐던 인천국제공항 수속창구가 텅비었다. 올 여름 해외여행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8%가 급감할 전망이다. 은퇴 후 행복한 노년을 계획했던 장·노년들의 버킷리스트가 축소됐다. 해외여행을 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오래 남게 됐다.

영화 '버킷리스트'에 등장하는 프랑스 남부 이즈(Eze)의 쉐브르 도르 레스토랑, 인도 타지마할, 중국 만리장성, 탄자니아 세렌게티국립공원, 이집트 피라미드 등에 가기란 쉽지 않다.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카터(모건 프리먼)가 말년에 떠난 세계여행의 문이 닫혔다.

인류의 역사는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비포 크리스트(BC, before Christ)와 아노 도미니(AD, anno Domini)로 구분된다. 하지만 현대 인류 문명은 코로나19 이전(BC, before Corona)과 이후(AD, after Disease)로 각기 다른 삶의 패러다임을 보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미 온라인 경제시스템과 재택근무 등이 확대됐다.

전염병은 인류 역사를 반전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1665년 영국 런던에서 페스트 대역병이 발생하자 케임브리지대학에 다니던 아이작 뉴턴은 자택농장에서 홀로 지냈다. 자가격리에 들었던 시기에 미적분 기초를 만들고 만유인력이론을 정립했다. 또 증기기관과 기차, 방적기의 발명 등 대량생산과 유통을 촉발하는 산업혁명의 시대가 왔다.

14세기 흑사병의 가장 큰 피해지역으로 손꼽히는 이탈리아 베니스와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다. 인본주의의 개막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콜럼버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등 예술과 과학이 전성기를 맞았다. 근대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반니 보카치오는 1348년 피렌체에서 역병으로 부모를 잃었다. 역병의 도시에서 벗어난 투스칸에서 남녀 10명이 만났다. 보카치오는 열흘 동안 이들의 100개 이야기를 담아 <데카메론>을 썼다.

미국 뉴욕시 북부 힙합의 고향 브롱크스 인근에 무연고 시신을 안치해 왔던 하트섬은 비극의 섬이 됐다. 감당할 수 없는 코로나19 사망자를 매장하는 참혹한 미국의 현실을 상징한다. 세계 185개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봉쇄와 차단, 집단면역의 정도에 따라 성패가 나타났다. 중국과 몽고, 북한 등은 봉쇄, 대한민국은 차단에 힘썼다. 그 결과 위기에 잘 대처한 나라로 인식된다. 반면 스웨덴, 미국 등은 집단면역이 확산되는 등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100여 년 전의 스페인독감은 미국 캔자스에서 발생해 유럽으로 퍼진 미국독감이다. 미국은 70만명의 희생자가 나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그럼에도 1일 오후 2시 집계기준 코로나19는 확진자, 사망자 모두 미국이 선두다. 불행을 막기 위해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요즘 도시텃밭이 휴식의 공간이 된 듯하다. 산책로를 걷고 원두막과 벤치에서 답답함을 내려놓는다. 연수구 송도석산 '힐링텃밭'에 문화예술 시설이 공존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남동구 실버농장은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위축된 노인들의 활동을 지원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연수구로부터 분양받은 송도행복텃밭 일부를 외국인들의 코로나19 극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코로나19는 “100년에 한 번 나올 보건 위기”라며 국제적 비상사태를 유지한다고 밝혔다. 세계는 넓지만 직접 소통의 길은 제한적이다. 온라인 '랜선 세계여행'을 떠나고 텃밭 나들이로 휴가를 달랜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두 작품을 나란히 놓았다. 1893년 작품 '절규'와 1919년의 '스페인 독감 직후의 자화상'이다. 슬프고 불안한 고통, 스페인독감의 우울과 공포가 코로나19 상황과 대비돼 움직인다. 과거의 전염병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기회가 반드시 수반됐었다. 코로나19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BC시대로 갈 수도 없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화두로 삼아 기회를 탐색해야 하겠다.

 

/논설주간 김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