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인천시장을 비롯한 42명의 지역인사들이 방북 길에 올랐다. 북한의 공식초청을 받은 지방자치단체장 최초의 방북이었다.

인천공항에서는 북한이 보낸 고려민항기가 이들을 맞았다. 안상수 시장은 “인천이 평화와 번영을 통한 동북아 경제중심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는 일성과 함께 방북 길에 올랐다. 당시 방북에서는 인천~개성 간 도로개설과 강화군과 개풍군을 잇는 연륙교 건설, 그리고 남포와의 교류협력 문제가 논의되었다.

남북교류협력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이 때의 방북은 2004년 인천에서 개최된 6•15공동선언 4돌 기념 우리민족대회의 성공적 개최가 큰 힘이 되었다. 당시 대회는 서울을 제외한 지방도시에서 최초로 개최된 행사였다. 이처럼 인천은 남북교류협력의 성공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최초의 남북교류협력으로 기록된 1984년 북한의 홍수 피해 구호물품이 도착한 곳도 인천항이었음은 물론이다.

그 외에도 리설주가 참가한 것으로 알려진 2005년 제16회 아시아 육상경기선수권대회, 2005년 11월 남포항 현대화 사업에 대해 의향서까지 체결한 인천시 경제대표단의 방북, 그리고 2007년 평양시 체육단 축구장 현대화 사업과 평양 겨레하나 치과병원 건립 등 인천이 가진 남북교류협력의 역사는 매우 의미 있고 다양하다.

인천은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치달으면 그 긴장과 피해에 가장 심각하게 노출되는 도시다. 수차례의 서해교전과 연평도 포격사건 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화해국면에 들어서면 인천은 평화와 번영의 중심도시로 변모한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이나 10•4선언, 4•27판문점선언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우리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남북관계가 북미 간의 하노이회담이 결렬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렸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어졌고 최근에는 남북대화의 상징인 개성연락사무소가 처참히 폭파되었다. 대북전단 살포로 인한 커다란 사회적 혼란을 겪기도 하였다.

이런 중에 반가운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임종석 청와대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자신이 이사장을 맡은 재단을 통해 남북한 도시 30쌍의 결연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미 기초자치단체 두 곳과는 상당 부분 논의가 진척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대북 개별관광에 대한 긍정성을 인정하고 남북 간의 물물교환 방식의 교류협력 구상을 피력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에 북한도 우리 쪽의 매체와 시민단체의 주장을 인용해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국도 대선 전 3차 북미정상회담을 희망하며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분명히 어둠 속 한 줄기 빛과 같은 소식들이다. 긍정적인 신호다. 그러나 가능성이 무조건 현실화되지는 않는다. 기회는 늘 위기와 닿아 있지만 그 전환은 준비된 자에게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우선 인천시의 남북교류협력의 역사에서 북한과 합의되었거나 긍정적 반응을 얻었던 사업들을 정리하고 내용을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인천시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북한의 니즈(NEEDS)를 분석해 공통에 해당되는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경제특구와 경제개발지구에 전력을 기울이는 북한의 입장을 생각해 볼 때 인천시의 앞선 경제자유구역 경험은 북한에 매우 커다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성과 강화, 그리고 서해5도를 연계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것도 좋은 구상이 될 수 있다. 또 어획량 증산과 양식 생산량 확대를 강조하는 북한과의 수산양식기술의 교류도 좋은 교류협력사업이 될 수 있다.

 

 

장금석 인천시 남북협력특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