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 정부기관 대응방안 마련 요청
“스포츠 인식 대전환 국가적 책무 인식 필요”
교육·문체부에 선수보호 의무 법제화 권고
체육회 전문 징계위·양형 재량 최소화 주문

국가인권위원회가 15일 체육계 폭력•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대통령과 정부기관에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주문했다.

인권위는 먼저 “행정수반으로서 직접 중심을 잡고, 해당 사안이 국가적 책무라는 인식의 대전환을 이끌며, 오랫동안 견고하고 왜곡되어온 체육계 폭력적 환경과 구조를 변혁해줄 것”을 대통령에게 권고했다.

또 “체육계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인 인권위원회를 전문적 조사기구로 활용할 것”을 요청했다.

인권위는 “직권조사 결과, 오랜 기간 이어진 국가 주도의 체육정책과, 여기에서 비롯된 승리지상주의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체육계의 폭력•성폭력 피해는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며 권고 배경을 밝혔다.

이밖에 인권위는 근본적 구조 변화에 이르기 전까지, 체육계 폭력•성폭력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 자명하므로 현장의 보호체계가 일관되고 엄격하게 작동되도록 책임지고 조치할 것을 관계기관에 권고했다.

먼저 교육부장관 및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게 학교와 직장 운동부 지도자와 선수의 자격기준, 재임용 평가기준, 폭력 등 징계전력 반영, 선수보호 의무를 법제화하고 시행되도록 조치할 것 ▲징계절차와 양형에 대한 통일된 기준을 마련하고 시행되도록 조치할 것과 체육단체와 학교의 사건처리를 정기 감사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 대한체육회장과 대한장애인체육회장에게 ▲폭력•성폭력 사건에 대한 전문적인 통합 징계위원회를 설치하고, 징계양형에 대한 재량을 최소화할 것 ▲교육부장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대한체육회장, 대한장애인체육회장에게 폭력•성폭력 신고의무를 제도화할 것 ▲단체별 징계정보 관리 및 공유 체계를 마련할 것 등을 권고했다.

앞서 인권위는 2019년 2월 인권위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가 함께 참여하는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을 꾸려 스포츠분야에서 발생하는 폭력•성폭력 사안을 중심으로 진정을 받았다. 이 가운데 학교나 직장 운동부에서 폭력•성폭력 피해를 체육회 등에 신고했는데, 이를 지역종목단체로 이첩한 후 아무 조치가 없다거나, 폭력 등 가해자에 대한 별다른 제재가 없어 추가 피해가 있다는 내용이 다수 있었다.

이에 인권위는 스포츠계 폭력•성폭력 사안이 일부 단체나 기관에 한정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보고, 2019년 4월 직권으로 통합체육회 및 소속 회원(가맹)단체, 교육(지)청,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에 대한 확대 조사를 결정한 후 같은 해 10월까지 344개 기관을 대상으로 최근 5년간 폭력•성폭력 신고 처리 사례와 이들 기관들의 선수•지도자에 대한 보호제도 및 구제체계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대한체육회 및 대한장애인체육회와 회원(가맹)단체 등은 반복되는 폭력 문제에 대처하고자 비교적 엄격한 처리 기준과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키지 않는 사례가 다수였다.

지방자치단체나 기타 공공기관은 이런 기준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초중고교는 학생 중심의 학교폭력대응 제도 속에서만 피해구제 절차가 진행될 뿐, 지도자에 의한 가해에 대해서는 적정한 기준조차 없는 실정이다.

대학교는 학교폭력대응 제도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아 자체적인 대응 수준에 머물렀다.

또 국민체육진흥법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의무로 규정된 '신고 및 상담 시설의 설치 및 운영'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결론적으로 스포츠계가 나름의 인권보호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폭력•성폭력 가해자의 신분과 소속에 따라 조사•징계처리를 하는 기관과 단체 및 징계 기준이 제각각이거나 없는 경우가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과 신고 창구가 미흡하며 ▲신고하더라도 처리 지연, 사건 이첩•재이첩이 빈번해 결국 피해자의 신상이 소속 기관•단체에 쉽게 알려지거나 공정한 처리가 이뤄지지 않으며 ▲엄격한 기준이 있음에도 자율적, 혹은 규정에 없는 이유로 징계를 쉽게 감경하거나 ▲징계정보가 단체•기관별로 각자 혹은 부실하게 관리되어 폭력•성폭력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쉽게 활동을 재개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파악했다.

이에 인권위는 스포츠계의 폭력•성폭력 피해의 상담•신고부터 조사•처리 및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인권보호체계의 사각지대를 최소화하는 것과 체육단체의 엄격하고 일관된 대응체계 마련이 우선 실천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고 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되짚어보며, 일부 체육행정의 주체들만의 개혁과 실천만으로는 이와 같은 불행을 막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보고,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스포츠 패러다임에 대한 대전환을 직접 국가적 책무로 이끌어 줄 것을 권고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만 기자 male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