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도발적인 단정(斷定)의 말은 구글의 빅 데이터 분석가인 스티븐슨 다비도위츠가 쓴 책의 제목이다. 아니,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고? 그게 사실이야? 나는 그렇지 않은데? 이런 반문을 하고 싶을 때, 그가 되묻는다. “모두 입을 모아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당선됐다. 진실의 샘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일상의 거짓말을 예시한다. “아프지 않은 때 아프다고 전화한다. 하지 않을 거면서도 연락하겠다고 말한다. 우울한데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상사에게,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의사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이상한 버릇까지도 있다.”

그러니 여론조사에서 거짓말을 하고, 페이스북에서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내놓는 것은 예사로운 일상사가 된다. “페이스 북은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괜찮게 사는지 자랑하는 디지털 허풍약이다.” SNS에서 '좋아요'를 얼마나 받았는지에 온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이 그날의 삶의 지수가 된다면 그 같은 삶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 것이 될까?

그 수준에서 거짓말을 한다면 그래도 용서할 수 있다. 심리적 상처까지는 몰라도 직접적으로 목숨을 위태롭게 하거나 물질적, 금전적 해를 심각하게 끼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 가운데는 결코 용납 받지 못할 것이 있다. 먹을거리에 거짓을 섞어서 파는 사기꾼들 말이다. “가격은 같게, 내용물은 적게” 넣는 수법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그들 상당수는 전 세계 어린이의 건강을 염려하는 듯 '균형 잡힌 아침식사'를 운운하면서도 '시리얼'이 해로운 설탕 범벅이라는 것을 결코 말하지 않는 거짓말쟁이의 면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타민이나 무기질이 전혀 없는 중독성 단맛에 길들여진 어린 소비자들은 이후 콜라, 사이다, 아이스크림 등에 탐닉하다가 커서 비만 왕국의 주인공이 된다.

거짓말 식품을 노골적으로 만드는 나라도 있다. 중국 하남성에서는 가격이 급등하자 노른자위, 흰자위, 껍질까지 모두 화학약품으로 만든 가짜 계란이 판매되었고, 가짜 분유를 먹은 영유아 13명이 안휘성에서 숨지자 낙농국 호주에 가 '케리케어', '노발락 콜릭', '벨라미스' 같은 청정 우유를 사재기하며 난리를 피웠던 해프닝은 세계의 토픽이었다.

그보다 한술 더 뜨는 위선적 거짓말도 있다. 법에 기대어 상대를 구렁텅이에 처넣으려는 간교한 새빨간 거짓말-'무고'는 해악의 정도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거짓말을 엄정한 법의 틈바구니에 밀어 넣어 상대를 쓰러뜨리려는 음모는 옛 사화에서 두루 본 바와 같지만 21세기 벌건 대낮에도 무고자(誣告者)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며 날뛴다.

2018년 10월의 대검찰청 자료는 무고죄 관련 접수 사건이 2011년 8541건에서 2017년 1만475건으로 6년 만에 22.6%가 늘어났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접수된 무고죄 사건 중 상당수는 기소되지 않고 종결됐다. 2017년만 해도 불기소율은 67.8%에 달한다. 그 중 상당수는 성폭력 관련 무고인데 2017년의 경우만 해도 84.1%가 불기소 처분될 정도였다.

무고와 함께 위증(僞證)도 고질적 한국병이 된 지 오래다.

통계를 일일이 들 것도 없는 현상이 됐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법정에서까지 겁 없이 거짓말을 해 대 유죄 판결을 받은 이가 연간 1000여명을 상회한다는 것은 무너져가는 사회적 신뢰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 같은 풍토 조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누가 봐도 정치권이다.

물은 아래로 흐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그것이 순리다. 선거 때가 되면 으레 후보자들은 믿거나 말거나 식의 화려한 공약(公約)을 내세운다. 당선을 위해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며 막무가내 식으로 거짓말 경쟁을 한다.

그 후 그것이 공약(空約)으로 밝혀졌을 때는 오히려 성을 내며 어떻게 '공약'을 다 실천할 수 있느냐고 큰소리를 쳐 왔다.

물론 거짓말에는 미국의 소설가 오 헨리가 담벼락에 그려낸 '마지막 잎새'도 있다. 그 같은 선의의 거짓말은 정신적 플라시보 혹은 사회 윤활유적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그 바탕에 정직과 솔직함이 없으면 필요악도 못 된다. 그렇다면 침묵하는 것은 어떨까? 침묵은 대부분 금이 아니라 거짓이다. 말하지 않고, 쓰지 않는 침묵은 비겁한 거짓말과 같다.

 

주필 조우성